사우디 첫 車 브랜드 시어, 전기 세단·SUV 공개

2027년 판매 시작…2030년까지 7개 차종

BMW·폭스콘 협업…PHEV·내연기관까지 확대

2034년 중동·북아프리카 진출 목표

GDP 80억달러 기여…‘탈석유’ 산업다각화

시어(CEER)의 전기 세단 ‘엑소봇(EXOBOT)’이 2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라 경제도시에 위치한 시어 제조 복합단지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서 공개되고 있다. [로이터]
시어(CEER)의 전기 세단 ‘엑소봇(EXOBOT)’이 2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라 경제도시에 위치한 시어 제조 복합단지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서 공개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자동차 생산국’으로의 변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부펀드(PIF)가 만든 사우디 최초 자동차 브랜드 ‘시어(Ceer)’가 첫 전기차를 공개하고 내년 판매에 돌입한다. BMW와 폭스콘 등 글로벌 기업의 기술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현지 생산 생태계까지 구축해 자동차 산업을 ‘탈석유’ 경제를 이끌 새 성장축으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는 21일(현지시간) 킹 압둘라 경제도시에 위치한 시어 생산단지에서 플래그십 전기차 ‘엑소봇(EXOBOT)’을 공개했다.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차량은 프리미엄 전기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2종이다. 두 차량은 2027년 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자동차 브랜드 시어(CEER)가 공개한 플래그십 전기차 ‘엑소봇(EXOBOT)’. 왼쪽은 세단, 오른쪽은 SUV 모델이다. [시어 제공]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자동차 브랜드 시어(CEER)가 공개한 플래그십 전기차 ‘엑소봇(EXOBOT)’. 왼쪽은 세단, 오른쪽은 SUV 모델이다. [시어 제공]

무함마드 왕세자가 직접 신차 공개에 나선 것은 자동차 산업을 국가 차원의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시어의 첫 차량 출시는 지속가능하고 번영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정에서 또 하나의 진전을 의미한다”며 “투자 유치와 자국 인재 육성, 민간 부문의 역할 확대를 통해 자동차 산업을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키우고 사우디를 이 산업의 선도적인 지역·글로벌 허브로 자리매김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어는 PIF와 대만 폭스콘이 합작해 2022년 설립한 사우디 최초의 자동차 브랜드다. 사우디가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제조업을 키우기 위해 추진하는 ‘비전 2030’의 대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첫 작품인 엑소봇에는 글로벌 자동차·전자기업의 기술이 대거 투입됐다. 폭스콘이 차량 전기전자 아키텍처를 공급하고, BMW가 엔지니어링 분야를 지원했다.

디자인에서도 기존 양산차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세단과 SUV 모두 약 3m 길이의 ‘샤힌 윙 도어’를 적용했다. 사우디를 상징하는 샤힌 매가 날개를 펼치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도어로, 스마트키나 버튼을 누르면 약 60㎝의 호를 그리며 위쪽으로 열린다. 통상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에 위치하는 B필러도 없앴다. 대신 고강도 소재를 적용해 차체 구조와 안전성을 확보했다.

사우디 건국 연도인 1932년에서 착안해 32개의 시그니처 라이트 바도 배치했다. 전면에는 길이 2400㎜에 달하는 대형 윈드실드를 적용했다. 민간 승용차에 적용된 윈드실드 가운데 역대 최대 크기다.

차체 자체도 대형급이다. 세단은 전장 5260㎜, 전폭 2100㎜, 전고 1430㎜이며 SUV는 각각 5020㎜, 2100㎜, 1690㎜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자동차 브랜드 시어(CEER)가 공개한 플래그십 전기차 ‘엑소봇(EXOBOT)’. 왼쪽은 SUV, 오른쪽은 세단 모델이다. [시어 제공]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자동차 브랜드 시어(CEER)가 공개한 플래그십 전기차 ‘엑소봇(EXOBOT)’. 왼쪽은 SUV, 오른쪽은 세단 모델이다. [시어 제공]

성능 역시 고성능 전기차에 초점을 맞췄다. 3개의 전기모터와 사륜구동(AWD) 시스템을 기반으로 최상위 모델은 최고출력 1111마력, 최대토크 1500Nm를 발휘한다. 세단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2.1초, SUV는 2.4초 만에 도달한다. 최고속도는 각각 시속 250㎞와 210㎞다.

사우디에서 개발된 차량답게 극심한 더위에도 공을 들였다. 독자 개발한 ‘하일로 쿨링’ 시스템을 통해 외부 기온이 65도에 달하는 시험 환경에서도 차량 내부 온도를 10분 만에 32도까지 낮출 수 있도록 설계했다. 특수 포일과 삼중 은코팅 유리, 전·후석 듀얼 에어컨 등을 함께 적용했다.

실내에는 대시보드 양 끝을 연결하는 48인치 8K 커브드 디스플레이와 10.4인치 센터 디스플레이, 8인치 후석 화면이 들어간다. 아랍어와 영어를 지원하는 인공지능(AI) 음성비서와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디지털키도 지원한다.

짐 델루카 시어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에 “사우디아라비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차량 디자인에는 사우디의 자연환경과 문화를 반영했다. 설계와 엔지니어링도 사우디 현지에서 진행했으며 글로벌 시장 판매를 염두에 두고 각국의 안전·환경 규제를 충족하도록 개발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라 경제도시의 시어(CEER) 제조 복합단지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서 전기 세단 ‘엑소봇(EXOBOT)’이 공개되고 있다. [로이터]
2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라 경제도시의 시어(CEER) 제조 복합단지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서 전기 세단 ‘엑소봇(EXOBOT)’이 공개되고 있다. [로이터]

생산 역시 사우디에서 이뤄진다. 시어는 킹 압둘라 경제도시에 ‘시어 매뉴팩처링 콤플렉스(CMC)’를 구축하고 있다. 이 시설을 중동 최대 규모이자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화 기술을 적용한 자동차 생산단지로 키운다는 목표다.

현지 생산을 통해 주문에서 인도까지 걸리는 기간을 ‘개월’이 아닌 ‘주’ 단위로 줄이고, 2034년에는 부품 현지화율을 4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시어는 앞으로 5년 동안 총 7개 모델을 내놓을 계획이다. 내년 전기 세단과 SUV를 먼저 판매한 뒤 2028~2030년 사이 대중적인 가격대의 5개 모델을 추가한다. 특히,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 속도가 지역별로 엇갈리는 만큼 향후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와 내연기관 차량까지 제품군을 넓힐 예정이다.

수출시장도 노린다. 2028년 사우디 주변 국가를 시작으로 판매 지역을 넓히고, 2034년까지 중동·북아프리카(MENA) 전역으로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라 경제도시에 위치한 시어(CEER) 제조 복합단지에서 21일(현지시간) 열린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서 전기 세단 ‘엑소봇(EXOBOT)’이 공개되고 있다. [로이터]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라 경제도시에 위치한 시어(CEER) 제조 복합단지에서 21일(현지시간) 열린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서 전기 세단 ‘엑소봇(EXOBOT)’이 공개되고 있다. [로이터]

실제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경쟁환경은 만만치 않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BYD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점유율을 키우고 있고, 기존 완성차 업체들도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보급형 전기차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피스커와 어라이벌, 로즈타운 등 한때 주목받았던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잇달아 사업에 실패한 것도 부담이다.

사우디 역시 과거 자동차 생산기지 구축에 여러 차례 도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10여 년 전 추진했던 재규어랜드로버 현지 공장 계획은 무산됐고, 토요타도 2019년 높은 인건비와 부족한 현지 부품 공급망 등을 이유로 현지 생산 계획을 접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우디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글로벌 부품사들이 잇따라 현지에 진출하면서 자동차 공급망이 형성되고 있어서다. 미국 자동차 부품업체 리어를 비롯해 독일 벤텔러, 중국 팡신 등이 사우디 현지에 생산거점을 마련했다. 한국 부품업체 신영도 현지 공급망에 합류했다.

사우디는 시어를 단순 완성차 업체가 아닌 현지 자동차 산업 생태계 구축의 구심점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완성차 조립뿐 아니라 부품과 연구개발, 인력 양성까지 자국 내에서 연결해 제조업 기반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경제적 목표도 크다. 시어는 2034년까지 사우디 국내총생산(GDP)에 80억달러(약 11조원) 이상을 기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무역수지 개선 효과는 210억달러(약 29조원) 이상으로 예상했다. 자동차 산업을 통해 직·간접적인 일자리도 대거 창출한다는 목표다.


kwate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