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암컷 쥐에 위고비 성분 투여했더니 수명 92일 늘고 신체기능 유지
밥 굶지 않아도 세포 속여 노화 막아…美서 50~70대 대상 임상 中
비만약, 만성 노인성 질환 치료제로 주목…펩타이드 품은 삼바·한미 수혜 기대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비만과 당뇨병 치료제로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의 지형을 바꾼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약물이 인간의 수명을 늘리고 노화를 억제하는 항노화 치료제로의 영역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다. 동물실험에서 수명 연장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데 이어, 사람을 대상으로 생물학적 노화 지연 효과를 검증하는 공식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버클리) 다니카 첸 교수 연구팀은 지난 2일(현지시간) 발표한 연구 논문을 통해 노년기 쥐에게 GLP-1 수용체 작용제인 ‘세마글루티드(제품명 위고비·오젬픽)’를 투여한 결과 수명이 유의미하게 늘어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인간의 약 60세에 해당하는 생후 20개월 된 건강한 암컷 쥐를 대상으로 3개월간 세마글루티드를 투여한 뒤 장기 추적 관찰을 진행했다. 그 결과 세마글루티드를 투여받은 쥐의 평균 수명은 834일로, 약물을 투여하지 않은 대조군(평균 742일)보다 12%(92일) 더 길었다.
약물 투여군은 수명 연장뿐 아니라 운동 협응력과 근육 기능, 체내 당 대사 능력 등 주요 생리 기능 평가에서도 대조군 대비 우수한 상태를 유지했다. 체내 노화를 촉진하는 만성 염증을 비롯한 세포 및 분자 수준의 변화 역시 완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번 연구는 장수 효과가 입증된 대표적 식이 요법인 ‘칼로리 제한(CR)’과의 1대 1 비교를 통해 세마글루티드가 단순 식욕 억제 이상의 효과를 낸다는 점을 규명했다. 세마글루티드는 칼로리 제한이 주는 신체 기능 보존 효과를 그대로 재현하는 동시에, 공간 기억력과 탐색 욕구, 혈당 조절 능력 등에서는 칼로리 제한보다 더 유리한 개선 궤적을 보였다. 식사량 감소에 따른 2차적 반응을 넘어 세포 내 영양소 감지기와 노화 조절 유전자를 직접 제어하는 ‘칼로리 제한 모방제’로서의 기전적 틀을 입증한 것이다.
이번 논문은 동물실험 결과이지만, 인간 대상 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다. 글로벌 임상시험 정보 공개 플랫폼 ‘클리니컬트라이얼즈’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대 갤버스턴 의과대학(UTMB) 연구진은 일라이 릴리의 GLP-1/GIP 이중작용제인 ‘터제파타이드(제품명 마운자로·젭바운드)’의 항노화 효과를 검증하는 임상 2상(과제명 The Moody Longevity Trial)에 돌입했다. 55~70세 사이의 비만 또는 고혈압 등 체중 관련 동반 질환을 앓는 과체중 성인 90명을 대상으로 터제파타이드 투여 후 생물학적 노화 속도 변화를 추적하는 연구로, 2026년 2월 착수해 오는 2028년 1월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기대와 신중론이 교차하고 있다. 마이클 코를리 UC샌디에이고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장수 치료제를 찾는 과정에서 GLP-1 약물은 가장 유망한 후보로 손꼽힌다”면서도 “실제 장수 처방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수년 이상의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GLP-1 계열 약물인 엑세나티드를 통해 수컷 쥐의 근력 감소 지연 효과를 밝혀냈던 호 코 홍콩중문대 교수는 “이번 연구가 암컷 쥐를 대상으로 진행된 만큼 성별에 따른 효과 차이를 확인하는 교차 연구가 필요하다”며 “완전히 건강한 일반인보다는 노화 관련 질환의 초기 단계에 진입한 환자군을 중심으로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하는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GLP-1 계열의 적응증 확장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파이프라인과 생산 인프라 가치 재평가로도 직결되고 있다. 비만 치료제의 모달리티가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른 심혈관·신장 질환 등 만성 노인성 질환은 물론 장수 치료제로 이어지면서, 펩타이드 기반 신약과 생산 설비를 선제 확보한 기업들의 수혜가 예상된다.
실제 한미약품이 최근 글로벌 빅파마 로슈 그룹 제넨텍에 최대 23억달러(약 3조20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한 ‘HM17321’은 근육 손실을 방지하고 체성분을 개선하는 펩타이드 기반 신약으로, 향후 노인성 근감소증 및 대사 복합 치료제로서의 확장 잠재력이 높게 평가받는다.
글로벌 위탁개발생산(CDMO) 시장에서도 펩타이드 확보 경쟁이 불붙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3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스위스 펩타이드 전문 CDMO인 ‘폴리펩타이드그룹’을 약 2조7000억원에 전격 인수한 배경 역시 급증하는 비만 치료제 수요를 넘어 거대 항노화 메디컬 시장의 핵심 원료 공급망을 선점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silverpaper@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