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D, 지방선거 1위로 세계대전 후 첫 주정부 눈독
방화벽 원칙 고심…고수시 당내 반란·분열 위험
AfD 용인시 연정붕괴·친러세력의 정보·안보 접근 우려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독일 극우 정당 독일대안당(AfD)이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에서 44%가 넘는 득표율로 압승하면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정치적 외통수에 몰렸다. AfD와의 협력을 차단하는 이른바 ‘방화벽’ 원칙을 고수하면 당내 반발과 분열을 감수해야 하고, 이를 허물면 연방정부 연정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처음으로 극우 정당이 주정부를 이끌 가능성이 현실화하면서 독일 정치의 오랜 금기가 시험대에 올랐다.
6일(현지시간) 독일 공영방송 ZDF의 오후 11시 22분 기준 집계에 따르면 AfD는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44.4%를 기록해 전체 83석 중 39석을 확보했다. 단독 과반인 42석에 불과 3석이 부족한 압도적 1위다. 메르츠 총리가 소속된 중도보수 기독민주연합(CDU)은 17.2%를 얻어 15석에 그치며 2위로 밀려났다.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은 9.1%, 녹색당은 8.9%, 좌파당은 8.6%를 득표해 각각 8석을 확보했다. 극좌 포퓰리즘 정당 자라바겐크네히트동맹(BSW)은 5.2%로 5석을 차지했다. AfD는 다른 원내 정당 한 곳만 연정 파트너로 확보하거나 다른 당 의원 3명 이상을 끌어오면 과반 지지를 바탕으로 주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연정 구성에 실패하더라도 소수정부를 수립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다른 당 의원들이 주총리 선출 투표에서 기권하는 등 소극적으로 협조할 경우 AfD의 주총리 후보인 울리히 지그문트가 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극우 정당이 주정부를 구성한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한 차례도 없었다.
AfD 공동대표 앨리스 바이델은 이번 선거 결과를 “역사적인 결과”라고 평가하며 “우리는 통치하라는 매우 분명한 위임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단독 과반에는 조금 못 미쳤지만 AfD 주도 정부를 지지할 가능성이 있는 주의원들에게 손을 내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는 CDU의 참패이기도 하다. CDU 득표율은 2021년 6월 선거와 비교해 19.9%포인트 하락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AfD 득표율은 23.6%포인트 급등했다. 퇴임하게 된 CDU 소속 스벤 슐체 작센안할트 주총리는 방화벽 원칙을 계속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피한 채 당이 패배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메르츠 총리에게 남은 선택지 모두 상당한 정치적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주요 정당들은 나치 정권의 역사적 경험과 반민주주의적 극단주의에 대한 경계 속에서 AfD와의 협력을 거부하는 ‘방화벽’ 원칙을 유지해왔다. 메르츠 역시 AfD와의 소극적 협력까지 배제하며 이 원칙을 고수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메르츠가 방화벽을 유지하도록 요구할 경우 CDU는 SPD와 녹색당, 좌파당, BSW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연정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적 입장 차이가 큰 좌파 정당들과 손을 잡는 데 대해 동부 독일 CDU 의원들의 저항이 강해 당내 반란이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CDU 인사들은 AfD를 무조건 배척하는 전략이 오히려 유권자들을 소외시키고, CDU가 지지하지 않는 정책을 가진 정당들과 연정을 구성하도록 만들어 정책 교착을 초래한다고 비판한다. AfD 지지세가 강한 동부 지역에서는 방화벽을 둘러싼 당내 의견 차이가 더욱 뚜렷하다.
미국 싱크탱크 독일마셜펀드의 수다 데이비드윌프 부대표 겸 선임연구원은 “방화벽은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핵심 정책”이라며 “이는 독일에서 보수주의자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직결된다. AfD의 친러시아 성향이나 유럽에 대한 적대감 등을 보면, 보수주의는 AfD가 지지하는 많은 것과 정반대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메르츠가 방화벽 원칙을 포기하고 작센안할트주 CDU에 AfD와 협력할 재량권을 부여하는 것도 위험하다. 이는 CDU 내부의 또 다른 분열을 불러올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재 SPD가 참여하고 있는 연방정부 연정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SPD는 AfD와 어떤 방식으로든 협력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선거 직후 BSW는 공식적으로 방화벽 정책의 폐기를 촉구하며 유권자들이 방화벽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AfD가 단순한 항의 정당을 넘어 실제 통치권을 요구하는 단계에 들어서면서 기존 정당들의 대응도 한층 복잡해졌다.
AfD의 득표율은 1950년대 이후 독일 전역의 주의회 선거에서 단일 정당이 기록한 성적 가운데 손꼽힐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다만 작센안할트는 옛 동독 지역에 속한 인구 약 230만명의 주로, 독일 전체 인구 약 8350만명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아 연방정부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AfD가 실제 주정부를 구성할 경우 안보와 정보 분야에서 파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주정부를 장악하면 경찰과 독일 국내 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BfV)의 작센안할트주 지부에 대한 접근 권한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BfV는 극단주의 조직 감시 등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지난해 5월 AfD를 ‘반헌법적 우익 극단주의 조직’으로 확정 지정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해당 지정의 효력은 법원 결정으로 일시 보류된 상태다. 독일 연방정부와 안보 관계자들은 친러시아 성향을 드러내 온 AfD가 주정부를 통해 비밀 정보에 접근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메르츠 총리는 극우 정당의 권력 진입을 막아온 독일 정치의 원칙과 선거 결과가 만들어낸 새로운 권력 구도 사이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CDU의 결속과 연방정부 연정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어 이번 지방선거가 메르츠 정권의 중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sj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