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형 적립금 91.9% 원리금보장 상품에 편중
지난해 수익률 3.5%…DC형 8.5%·IRP 9.4% 크게 밑돌아
최근 5년 임금 18.9% 오를 때 DB형 누적수익률 15.9% 그쳐
노동부·금감원, 운용 우수기업 포상·적립금 미충족 사업장 감독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국내 퇴직연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의 지난해 수익률이 3.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DB형 적립금의 90% 이상이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는 보수적인 운용 관행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는 DB형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으면 기업의 적립금 부담이 커지고 근로자의 퇴직급여 수급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운용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목표수익률을 임금상승률 이상으로 설정하고, 향후 지급해야 할 퇴직급여 부채의 만기에 맞춰 투자자산을 배분하도록 유도한다.
26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501조4000억원 가운데 DB형은 228조9000억원으로 45.7%를 차지했다.
DB형은 근로자가 퇴직할 때 받을 급여가 사전에 정해지고 기업이 적립금 운용 책임을 지는 방식이다. 기업의 운용 성과에 따라 근로자가 받는 퇴직급여가 직접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수익률이 낮을수록 기업이 퇴직급여 지급을 위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돈이 늘어난다.
문제는 DB형의 낮은 수익률이다. 지난해 DB형 연간 수익률은 3.5%로 DC형 8.5%, IRP 9.4%에 크게 못 미쳤다. 2023년에도 DB형 수익률은 4.5%로 DC형 5.8%, IRP 6.6%보다 낮았고, 2024년 역시 DB형 4.0%, DC형 5.2%, IRP 5.9%로 격차가 이어졌다.
장기 수익률에서도 임금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2021~2025년 DB형의 연도별 수익률을 복리로 계산한 누적 수익률은 15.9%였지만 같은 기간 임금 상승률은 18.9%였다. 적립금 수익률이 임금 상승률보다 약 3%포인트 낮은 셈이다.
DB형에서 낮은 수익률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편중된 자산 배분이 있다. 지난해 말 DB형 적립금 가운데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은 91.9%에 달했다. 반면 DC형은 67.0%, IRP는 44.3%였다.
DB형 가입자는 퇴직 시점의 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한 금액을 받기 때문에 임금이 오르면 기업이 지급해야 할 퇴직급여도 함께 증가한다. 따라서 적립금 수익률이 임금 상승률을 밑돌면 기업은 부족해진 적립금을 추가로 채워 넣어야 한다.
예컨대 월급 300만원인 근로자의 임금이 7년간 10% 올라 330만원이 됐다고 가정할 경우, 퇴직급여 지급에 필요한 재원은 총 2310만원이다. 6년 동안 적립한 1800만원에서 연 5% 수익을 거둬 90만원의 운용수익이 발생하더라도, 임금 상승으로 새로 늘어난 퇴직급여를 충당하려면 기업이 추가 부담을 져야 한다.
이에 정부는 DB형 퇴직연금의 목표수익률을 최소한 임금 상승률 이상으로 설정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퇴직급여 부채와 운용자산의 만기를 맞추는 자산·부채 종합관리도 강조한다. 미래에 지급할 퇴직급여를 현재가치로 환산한 ‘퇴직급여 부채’와 이를 지급하기 위해 쌓아 놓은 운용자산의 듀레이션을 비슷하게 맞춰 금리 변동 위험을 줄이는 방식이다.
현재 DB형의 자산 구조는 이 같은 원칙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난해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7.1년으로 퇴직급여 부채의 듀레이션도 약 7.1년으로 볼 수 있지만, DB형이 투자한 원리금보장형 상품 가운데 만기가 3년 이내인 상품이 83%를 차지했다. 구체적으로 1년 만기가 41%로 가장 많았고 3년 34%, 1년 초과~3년 미만 6%, 1년 미만 2% 등이었다.
정부는 기업이 퇴직연금사업자의 전문적인 운용 자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적립금운용위원회를 구성하고 적립금운용계획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300인 미만 사업장도 퇴직연금사업자에게 컨설팅을 요청해 목표수익률 설정과 자산 배분 등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실제 퇴직연금사업자의 자문을 받아 원리금보장형 상품 위주였던 포트폴리오를 채권·펀드·주가연계증권(ELS) 등으로 분산한 한 기업은 DB형 1년 수익률이 자문 전 5.9%에서 7.4%, 이후 25.5%까지 상승한 사례도 소개됐다.
정부의 관리·감독도 강화된다. 고용부는 연말 DB형 적립금을 우수하게 운용한 사용자와 사업자를 선정해 포상하고, 내년부터 DB형 퇴직연금 사업장 가운데 법정 최소적립금을 충족하지 못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정기감독을 실시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퇴직연금사업자가 DB형 가입 기업에 운용 개선을 적극적으로 자문하도록 독려한다. 금융당국은 퇴직연금사업자가 기업에 제공하는 DB형 운용 안내에 목표수익률 설정과 자산·부채 관리 등의 내용을 포함하도록 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DB형 적립금의 운용 성과는 기업의 납입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근로자의 퇴직급여 수급권 보호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라며 “퇴직연금 의무화가 예정된 만큼 체계적인 적립금 운용을 위한 관리·감독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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