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기능올림픽 의상·그래픽디자인·용접
국가대표 15분 안에 디자인 바꾸고, 45도 메달 상자는 직접 설계
AI도 익히고 손기술도 다듬고…청년 기술인들의 도전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지난 25일 중국 상하이 국제기능올림픽 의상디자인 경기장. 최보란 선수가 연한 초록색 원단에 흰 꽃 자수 원단을 겹쳤다. 재봉틀이 돌아가는 동안 두 손으로 천을 잡고 조금씩 방향을 바꿨다. 박음질을 마치자 가위로 튀어나온 실밥을 잘라냈다. 작업대 옆에는 친구들의 응원 문구가 빼곡한 태극기가 놓여 있었다.
이튿날 경기를 마친 최 선수는 “실밥 하나만 나와 있어도 감점 요소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래픽디자인 국가대표 권이겸 선수도 포장 상자를 만드는 과제를 설명하며 “1㎜라도 오차가 생기면 바로 틀어져서 박스가 안 맞을 수 있다”고 했다. 세계 무대에서 겨룬 것은 디자인과 기술, 그리고 이를 작은 오차 없이 완성하는 능력이었다.
실밥까지 살피고, 45도 메달 상자는 직접 설계
최 선수에게 주어진 과제 중 하나는 둘째 날 만든 스커트를 해체하고 디자인 요소를 추가하는 일이었다. 새 옷을 만들 것으로 예상했던 그에게는 뜻밖의 주문이었다. 디자인을 구상할 시간은 15분뿐이었다.
그는 꽃무늬를 하나씩 잘라 붙이는 대신 원단을 통째로 활용하고 가장자리를 처리했다. 손이 덜 가면서도, 잘못 자른 부분에서 실이 풀릴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주어진 시간과 재료 안에서 자신 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 디자인을 택한 것이다. 옷의 모양을 잡는 다림질에도 많은 시간을 썼다. 최 선수는 “다림질로 옷의 핏을 아예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선수도 평소에는 AI에 디자인 조언을 구한다. 자신이 만든 옷의 사진을 보내 장식을 어디에 추가하면 좋을지, 어떻게 바꾸면 더 창의적일지 묻는다. 다만 제한된 시간 안에 구현할 작은 디테일을 원했는데 지나치게 크고 화려한 디자인이 나와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권 선수의 그래픽디자인 과제 역시 화면 속 작업으로 끝나지 않았다. 둘째 날에는 메달과 이를 담을 포장 상자를 디자인해야 했다. 상자는 메달을 45도 각도로 세워 전시할 수 있는 구조여야 했다.
권 선수는 모형의 치수를 재고 컴퓨터로 구조를 설계했다. 두꺼운 종이에 출력한 뒤 직접 자르고 접어 상자를 완성했다. 메달을 설명하는 3단 접지물도 만들었다. 앞선 작업의 오차가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처음부터 치수를 정확히 맞춰야 했다. 그는 평소보다 집중이 잘돼 결과물도 만족스럽게 나왔다고 돌아봤다.
권 선수에 따르면 이번 그래픽디자인 경기에서는 인터넷 연결과 AI 기능 사용이 제한됐다. 하지만 평소 작업에서는 AI도 활용한다. 원하는 구도의 이미지를 찾기 어려우면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수정해달라고 요청한다. 세밀한 수정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작업에 도움이 되는 기능은 익혀두려 한다. 디자인 프로그램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달라진 기능도 하나씩 확인한다.
“AI 나오면 또 그거 공부하고, 또 다른 게 나오면 또 공부하고.”
낯선 철판 앞에서 멈춘 30초…순간 판단도 실력
용접 경기장에서는 붉은 보호창 너머로 불꽃이 튀었다. 국가대표 안창용 선수(삼성중공업)는 “용접은 0.1초 불이 깜빡이는 것에 미세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접 도중 기포가 순간적으로 보이면 작업을 멈추고 해당 부분을 갈아내는 등 바로 대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용접부는 외관뿐 아니라 엑스레이 검사로 내부의 기공과 결함까지 평가받는다. 안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훈련 때와 느낌이 다른 철판을 만났다. 작업을 멈추고 약 30초 동안 숨을 고른 뒤 물을 마시고 다시 용접에 임했다. 익숙한 기술을 낯선 재료와 환경에 맞춰 적용하는 일도 선수의 몫이었다.
고교 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용접을 시작한 그는 이제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제 은사인 지도위원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고 존경받는 은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권 선수는 세계대회를 준비하며 처음 익힌 모션그래픽을 더 배우고 싶어 한다. 움직이는 이미지로 기업의 제품을 알리는 광고를 만드는 것이 다음 목표다. 어릴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시작한 그래픽디자인이 세계 무대에 서는 기회가 됐고, 대회를 준비하며 또 다른 관심 분야도 찾았다.
수년간 준비한 대회의 끝은 쉽게 실감 나지 않았다. 권 선수는 셋째 날 익숙하지 않은 신문 형태의 책자 과제를 받아 아쉬움이 남았고, 마지막 날 아침에는 또 실수할까 걱정했다고 했다. 경기를 모두 마친 뒤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를 듣자 긴장이 풀리며 눈물이 났다.
“내일 또 훈련해야 될 것 같고, 이전이랑 똑같이 살 것 같은데 끝났다는 게 일단 믿기지가 않는 것 같아요.”
fact0514@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