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이 고종 대에 임진왜란으로 불타 폐허가 된 경복궁을 다시 지은 중건 공사는 1865년에 시작해 약 40개월 만인 1868년에 완공되었다.
우리 전통 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술자로는 돌을 다루는 석수(石手)와 나무를 다루는 목수(木手)가 있다. 조선시대 석수 이세옥(李世玉)의 걸작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 서 있는 두 동물 석상이다.
오늘날 서울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해치 또는 해태라고 불리는 이 상상의 동물을 자세히 보면 우리 토종 삽살개와 닮은 점이 눈에 띈다. 해치는 크고 둥근 이마, 강직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입매, 비교적 짧은 꼬리 등 삽살개의 특징에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표현한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삽살개는 최근에 만들어진 견종이 아니다. 우리 토종개들은 오랜 세월 방사 환경에서 자연선택을 거치며 대를 이어왔다. 2023년 건국대 박찬규 교수팀과 한국삽살개재단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iScience에 발표한 전체 게놈 분석은 한국 토종개의 기원을 유전학적으로 본격 추적했다.
논문은 한반도에서 이미 기원전 5500년에서 2000년 사이 신석기시대에 개를 사육한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고 지적한다. 유전체 연구는 삽살개의 뿌리가 수천 년 전 선사시대 동북아시아까지 이어짐을 보여준다. 특히 삽살개 특유의 긴 털을 만드는 유전자형은 세계 장모 견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형태로 분석됐다.
수천 년 동안 마을 어귀를 지키며 잡귀를 물리치는 수호견으로 여겨졌던 삽살개처럼, 경복궁 앞 해치도 선(善)과 악(惡)을 판단하고 정의를 지키며 나쁜 기운을 막는 수호자의 역할을 한다.
바다 건너 일본에는 고려견(高麗犬), 일본말로 코마이누(狛犬)라 불리는 석상이 있다. 신사나 사찰 입구에 한 쌍으로 놓여 악한 기운을 막고 신성한 공간을 지킨다.
한자의 박(狛) 자는 ‘고구려’를 뜻하는 용례와 연결된다.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가로로 부는 관악기 횡적(橫笛)도 일본에서는 고려적(高麗笛) 또는 **박적(狛笛)**이라고 불렸다. 광화문의 해치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코마이누 석상에서도 삽살개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 보인다.
개는 인류가 가장 먼저 길들인 동물 가운데 하나다. 뛰어난 충성심과 경계심 때문에 사람과 재산을 지키는 존재였고, 이러한 역할은 보이지 않는 위험과 잡귀까지 물리쳐준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특히 삽살개는 집과 마을 어귀를 지키는 수호견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하면서 보호와 충성, 믿음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의 삽살개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토종견 계통 가운데 하나다. 유전체 연구는 삽살개의 조상이 수천 년 전 북방 유라시아계 개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왕국을 세우기 훨씬 전부터 개들은 사람과 함께 한반도에서 살아왔다. 그 선사시대의 유전적 흔적을 오늘날까지 간직한 개가 삽살개다.
김두량의 1743년 「삽살개」 그림에는 영조가 직접 남긴 어제(御製)가 있어 당시 삽살개가 문을 지키는 개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사립문을 밤에 지키는 것이 네 책임이거늘, 어찌하여 낮에도 이처럼 짖고 있느냐.”
이 글은 삽살개가 조선시대에 집과 문을 지키는 수호견으로 인식되었으며, 그러한 이미지가 왕실에도 익숙했음을 보여준다.
『고종실록』은 “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를 정했다”고 기록한다. 궁궐 안에서는 관리들도 함부로 말을 타고 다닐 수 없었다. 삽살개가 집과 마을의 문을 지켰다면, 광화문 앞 해치는 궁궐의 경계를 지킨 것이다.
개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오늘날에도 사람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미국켄넬클럽(AKC)을 비롯한 여러 기관은 반려견과 함께하는 생활이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안정, 사회적 관계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반려견과 매일 산책하면 자연스럽게 신체활동량이 늘어난다. 개를 쓰다듬고 교감하는 행동은 스트레스와 긴장을 줄이고, 반려견을 돌보는 일은 외로움을 덜어주며 일상에 리듬과 목적을 만들어준다. 산책길의 반려견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특히 어린이에게 반려견과 함께 자라는 경험은 각별하다. 아이들은 그저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반겨주고 기다려주는 반려견의 조건 없는 애정을 경험할 수 있다. 먹이를 주고 산책시키며 돌보는 과정에서는 공감과 책임감, 인내와 생명에 대한 존중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아파트와 고층 건물이 밀집한 서울에서는 이런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 도시의 아이들은 과거처럼 동물과 자연스럽게 접촉하며 성장할 기회가 적다. 서울도 반려견을 단순한 애완의 대상이 아니라 가족의 정서적 동반자이자 어린이의 생명교육, 시민의 신체활동과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모든 가정이 개를 키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반려동물에는 책임과 시간, 비용이 따른다. 그러나 반려견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시민들이 책임 있게 동물을 키울 수 있도록 공원과 산책로, 어린이가 안전하게 동물과 교감할 공간, 공동주택에서 사람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넓혀갈 필요가 있다. 특히 수천 년 동안 사람 곁에서 집과 마을을 지켜온 우리 토종 삽살개를 오늘날에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도시의 반려견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다.
삶과 사후세계를 넘나드는 삽살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2022년 세상을 떠난 필자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반려견도 천연기념물 삽살개였다.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간 1세대 청삽살개 ‘진덕’(2010~2026)이었다. 넓은 뒷마당을 자신의 안방처럼 여기며 평생을 지낸 진덕은 평소 집 안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한밤중 세상을 떠난 날은 달랐다. 경찰과 구급대원이 자연사를 확인하고, 몇 시간 뒤 장의사 직원들이 아버지를 정성스럽게 모시고 집을 떠난 뒤였다. 돌아보니 뒷문을 통해 진덕이 집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평소에는 들어오지 않던 녀석이 방에서 방으로 천천히 돌아다니며 아버지를 찾는 듯했다.
그 슬픈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순간 나는 오래전 사람들이 왜 삽살개를 이승과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경계를 지키는 개로 여겼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진덕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알아차리고 마지막까지 그를 찾던 모습은 삽살개가 왜 오랫동안 충성과 보호, 믿음의 상징으로 기억되어 왔는지를 내게 다시 생각하게 했다.
잡귀를 물리치고 사람을 보호한다고 믿었던 삽살개의 전통적 역할과 오늘날 반려견이 사람에게 주는 신체적·정신적 안정은 결국 ‘사람을 지키는 개’라는 하나의 긴 역사로 이어진다. 삽살개는 과거 마을의 문을 지켰다. 광화문의 해치는 궁궐의 경계를 지킨다. 그리고 오늘날 삽살개 같은 반려견은 우리의 몸과 마음, 아이들의 정서적 성장까지 지켜주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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