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5조의 60%가 한방 진료비
관련 경상 환자 연평균 5.3% 증가
입원율 상위 10개 병원 한방 의료기관
이해관계 맞은 환자-병원 보험사기↑
# 교통사고로 한방병원을 찾은 환자가 받아든 문진표에는 통증 정도를 숫자로 고르는 항목이 있었다. 선택지는 5점부터 시작했다. 통증이 거의 없음을 뜻하는 0점부터 4점까지가 통째로 빠져 있었다. 환자는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아무리 가벼운 통증이어도 5점 이상을 고를 수밖에 없다. 이 점수는 진료비 청구의 근거가 되고, 입원과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의 정당성이 된다. 통원으로 30만~40만원에서 끝날 치료비는 입원과 MRI를 거치며 2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울산의 한 한방병원이 사용한 이 문진표는 서류상 하자가 없다. 진료기록도 청구서도 규정대로 채워져 있어 심사 단계에서 걸러지지 않는다. 한 손해보험사가 익명의 제보를 받은 뒤 직원을 실제 환자로 보내 이 같은 문진 과정을 확인했다. 이 병원에선 의사의 진찰이 이뤄지기 전 간호사가 환자를 데려가 방사선을 찍은 정황도 함께 드러났다.
자동차보험 진료비의 60%가 한방 의료기관으로 흘러가는 구조가 굳어진 가운데, 서류 심사만으로는 가려내기 어려운 과잉·부당청구도 함께 늘고 있다는 게 보험업계의 판단이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동차보험 진료비 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자동차보험 진료비는 1조5057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늘어난 것으로,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다. ▶관련기사 4면
이 가운데 한방 진료비는 8947억원으로, 양방(6109억원) 대비 3000억원 가까이 많았다. 2021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한방 진료비는 43.9% 증가한 반면 양방은 1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체 자동차보험 진료비에서 한방이 차지하는 비중도 53.5%에서 59.4%로 높아졌다.
경상환자 쏠림도 두드러진다. 상해등급 12~14급 경상환자 가운데 한방 의료기관을 찾은 인원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5.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양방 의료기관 이용자는 2.6% 감소했다. 지난해 기준 환자 1인당 치료비는 한방이 108만원으로, 양방(35만원)의 3.1배였다.
이 같은 현상은 건강보험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다. 지난해 건강보험 전체 진료비에서 한방이 차지한 비중은 2.8%에 불과했다. 목이나 허리 통증을 치료하더라도 자동차사고 환자일 때 한방 의료기관 이용이 유독 많다는 의미다.
보험업계는 환자의 본인부담이 없는 자동차보험의 비용 구조를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자동차보험 대인배상에서는 사고 상대방의 보험사가 치료비를 부담한다. 환자는 진료비가 늘어도 직접 내는 돈이 없고, 치료 기간은 향후 치료비와 합의금 산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의료기관은 진료 항목이 늘수록 매출이 커지는 반면, 보험사의 심사는 대부분 진료가 끝난 뒤 제출된 서류를 토대로 이뤄진다.
한 대형 손해보험사가 자사 경상환자 치료비 상위 100개 병원을 분석한 결과, 입원율이 가장 높은 10곳은 모두 한방병원 또는 한의원이었다. 이들 의료기관 입원율은 72~80%로, 평균 76%에 달했다. 양방 의료기관 평균 입원율(19.6%)의 약 4배다.
적발되는 보험사기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 회사가 올해 상반기 적발한 한방 관련 보험사기 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0%, 적발 건수는 75% 증가했다. 다만 적발 사례의 57%는 첩약 허위청구에 집중됐다. 청구내역을 대조하면 비교적 확인하기 쉬운 유형이기 때문이다. 반면, 진료기록 조작이나 허위 입원, 환자 리베이트 등은 자료 확보가 어려워 내부자 제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적발된 사례가 실제 부당청구의 일부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비용 부담은 결국 자동차보험 가입자에게 돌아간다. 손해보험사들은 올해 상반기 자동차보험에서 1890억원 손실을 내며 6년 만에 상반기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2월 5년 만에 보험료를 인상했지만, 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인 손해율은 여전히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지는 80%를 웃돌고 있다.
다음달 10일부터는 경상환자가 8주를 초과해 치료받으려면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 소속 전문의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다만 보험업계에서는 치료 기간을 중심으로 한 심사만으로 입원과 반복 시술, 진료 기록 조작 가능성까지 걸러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성준 기자
psj@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