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기업형으로 출발했지만 현실은 ‘가족농 기반 법인’
법인 수는 2배 늘었지만 재배면적 비중은 2% 못 미쳐…장기 임대차 활성화 제안
[헤럴드경제=김선국 기자] 협업적·기업적 농업경영을 목표로 도입된 농업법인이 실제로는 ‘가족농 기반 법인’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농 규모화를 위해 30여 년간 유지해 온 농업법인 정책도 현장 여건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5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발표한 ‘농업법인의 농지 소유·이용 실태와 과제’에 따르면 농업법인은 당초 농작물 생산 규모를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생산보다 유통·가공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 중심으로 성장했다. 개인농의 규모화도 이미 상당 부분 이뤄지면서 영농 규모화 정책에서 농업법인의 역할과 기능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농업법인 수는 2015년 3261개에서 2024년 7174개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농업경영체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 법인도 같은 기간 7228개에서 1만7956개로 증가했다. 하지만 전체 재배면적에서 농업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9%에서 1.92%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재배면적은 1만8207헥타르(ha)에서 2만7907ha로 증가했지만 전체 농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2%에도 미치지 못했다.
보고서는 이를 근거로 농업법인의 생산 기능은 제한적인 반면 농산물 유통과 가공을 담당하는 역할은 확대된 것으로 분석했다. 농업법인 수는 크게 늘었지만 영농 규모화를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개인농의 규모화도 상당 부분 진전됐다. 재배 규모 10ha 이상 대규모 경영체가 경작하는 면적 가운데 농업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1%에 그쳤다. 50ha 이상에서는 법인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간척지 등 법인이 접근하기 쉬운 특수한 입지의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농업법인이 영농 규모화를 특별히 촉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농업법인의 운영 방식도 제도 도입 취지와 차이를 보였다. 애초 여러 농업인이 생산요소를 결합해 협업·기업형 경영을 하는 구조로 설계됐지만 실제로는 ‘가족농 기반 법인’ 형태가 적지 않았다. 또 농업법인이 이용하는 농지의 70~80%는 출자나 매입이 아닌 임대차를 통해 확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농지를 법인 명의로 소유할 경우 조합원 간 이해관계, 상근 인력 확보, 직불금 수급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소유 확대에도 한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농업법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농지 소유 확대보다 장기 임대차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중심을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직불금과 세제에 따른 임대 기피 요인을 완화하고 농지 집적과 장기 임대차를 촉진하는 제도 개선이 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연구진은 이어 “농업법인의 장기 승계와 규모화를 위해 상속·증여 제도와 농업인 자격 기준도 현실에 맞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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