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 강원도 춘천 산골의 어느 여름밤이었다. 마당에 깔린 멍석 위에 누워 쏟아질 듯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별도, 나도 그 누군가의 몸속에 있다.”
그 광대함과 신비로움에 젖어 들면 이내 포근하고 행복한 감정이 밀려왔다. 60대 중반이 된 지금도 그날 밤의 강렬한 기억은 선명하다. 유·소년기를 산골에서 보낸 내게 산과 들, 강 등 자연은 늘 안식처이자 친구였다.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삶의 일부였다.
이후 도시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니며 자연과 점차 멀어졌다. 그러다 대학 2학년 때 군에 입대하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자연과 다시 만났다. 강원도 화천의 첩첩산중 최전방에서 통제된 군 문화와 고된 훈련 속에 약 2년 6개월을 복무했다. 그 기간 자연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특히 긴장감이 감도는 철책선 근무 당시, 새벽이면 산 능선을 따라 펼쳐지던 장엄한 ‘운무의 바다’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인간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도 자연은 늘 의연하게 인간을 품어준다. 어릴 적 느꼈던 ‘그 누군가의 몸속’처럼.
제대 후 다시 도시의 삶이 시작됐다. 직장생활과 결혼, 자녀 양육, 끝없는 경쟁과 업무 압박 속에서 자연과는 또다시 멀어졌다. 불규칙한 생활과 과로,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몸도 마음도 점점 더 지쳐갔다. 2010년 아내의 제안으로 강원도 홍천에 귀농하게 된 배경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16년간 시골에 살면서 안분지족의 일상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치유와 평안은 얻었지만, 한 가지 갈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내면에 각인된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최근 우리 가족은 경남 양산의 감림산기도원을 찾았다. 기복주의나 무속 신앙과 구별되는 영적 공간을 찾던 끝에 닿은 곳이었다. 3박4일 간 진행된 영성 훈련에도 참여했는데, 개인적으로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깨달음과 확신을 얻은 귀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1968년 문을 연 이후 오직 기도와 복음, 헌신과 사랑으로 숱한 역경을 헤쳐 왔다는 감림산기도원의 발자취는 경이로웠다. 이 기도원을 처음부터 만들고 이끌어 온 이옥란 원장, 그리고 목사·장로 등의 직분도 내려놓고 교육생들을 섬기는 봉사자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깊은 감동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부터 소외된 이들을 품는 사역까지, 묵묵히 시대를 지탱해 온 기도원 사람들에게서 내가 본 것은 ‘참 영성’이었다.
지금은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성을 압도하고 삶의 방식까지 바꾸는 시대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고 지성이 고도화될수록 우리의 내면은 역설적으로 더 메말라간다. 바로 영성의 결핍 때문이다.
영성은 우리를 초자연적인 존재와 연결해 주는 유일한 통로다. 내 영혼의 고향을 찾고 싶거나 삶의 무게에 지쳐 진정한 평안을 갈망하는 이들이 있다면 조용히 권하고 싶다. 영성의 깊은 샘이 있는 ‘기도의 동산’으로 한 번쯤 발걸음을 옮겨보라고. 그리고 그 생수를 맛보라고.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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