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주식 열풍에 뜨겁게 반응했다. 미국 빅테크 기업 주식이나 글로벌 ETF로 앞다퉈 투자처를 넓혔다.

그런데 만약 해외 주식 말고도 국내에서도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자산이 많아진다면 어떨까? 부동산이나 미술품처럼 과거에는 일부 자산가만 접근할 수 있었던 고가 자산을 소액 단위로 나눠 누구나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다면?

이러한 가능성의 문을 열고 있는 것이 바로 ‘자산 토큰화(Tokenization)’다. 자산 토큰화는 부동산, 미술품, 채권 등 고가의 비유동 자산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작게 나누어 디지털화하는 기술이다. 예컨대 서울 시내 초고가 빌딩이나 피카소 작품과 같은 자산을 물리적으로 나누지 않고 소유권을 디지털 토큰 형태로 쪼개 발행한다.

투자자는 단돈 1만원으로도 일부를 소유하고 언제든 사고팔 수 있게 된다. 과거에 10억원이 있어야 가능했던 투자를 이제는 커피 한두 잔의 가격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단지 투자 접근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산 토큰화를 통해 일반 투자자들도 그동안 고액 자산가들만 접근할 수 있었던 비유동 대체자산과 전통자산을 하나의 포트폴리오 안에 함께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고가 자산을 ‘작게 나누고, 크게 연결’함으로써 누구나 자신의 투자 성향에 맞는 정교한 자산 구성을 할 수 있는, 고도화된 자산관리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일부 글로벌 운용사와 핀테크 기업은 이미 시장에 진입해 빠른 속도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 JP모건은 뉴욕 맨해튼의 오피스 빌딩을 토큰화해 2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발행했고, 단기간 내에 전량이 판매됐다. 싱가포르 DBS은행은 1500만달러 규모의 채권을 토큰화한 후 약 30%의 유동성 개선과 함께 신규 투자자 유치를 이뤄냈다.

맥킨지는 자산 토큰화 시장 규모가 2030년까지 약 2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 금융기관도 이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2조달러 규모의 기회를 선점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필요하다.

첫째, 투자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실물 자산을 우선적으로 토큰화해 상품화해야 한다. 서울의 핵심 상업 부동산, 미술품, 희귀 와인, 한정판 시계 등 희소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자산이 우선순위다.

둘째, 발행된 토큰 자산이 실제로 거래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속히 조성해야 한다. 거래소나 플랫폼과 전략적으로 협력해 유통 인프라를 구축해야 자산의 실질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셋째,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적 기준과 내부 통제 장치를 명확히 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안정성과 신뢰를 동시에 확보할 때 투자자들도 안심하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넷째, 기술 중심의 설명보다는 투자자 관점에서 이해하기 쉬운 메시지가 필요하다. ‘1만원으로 강남 빌딩에 투자한다’는 식의 직관적인 표현이 효과적이다.

다섯째, 자산 토큰화를 전담할 조직과 인력을 미리 갖추고 실행 가능한 구조를 마련해 시장 진입 속도를 높여야 한다.

금융당국 차원의 규제 정비도 시급하다. 특히 토큰화된 실물자산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자산 토큰 거래소의 설립 및 운영 기준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자산 토큰화는 금융 시장에 밀려오는 또 하나의 기회다. 실물 기반이라는 점에서 투자자 보호, 접근성 향상, 금융기관의 운영 효율성 제고라는 세가지 과제를 동시에 충족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금융기관의 실행력, 정책당국의 제도 정비를 통한 확실한 뒷받침이다. 대한민국 금융의 미래는 이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과 타이밍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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