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사 가운루를 비롯한 건물들이 산불에 모두 불에타 흔적만 남아 있다. [연합]
고운사 가운루를 비롯한 건물들이 산불에 모두 불에타 흔적만 남아 있다. [연합]

실제 재난 복구비는 14%에 불과…예방에 86% 집행

재난예방 사업 기준 모호…지역현안 수요와 중복·자의적 편성?

“특별교부세 규모 축소하고 편성 투명성 강화 방안 마련해야”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정부가 예기치 못한 재난에 신속히 대응하겠다며 지방자치단체에 교부하는 ‘재난안전 수요 특별교부세’ 중 실제 재난 복구에 사용된 비중은 14%에 불과하고, 나머지 86%는 대부분 예방 사업에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방 사업 상당수는 지역현안 수요와 구분이 모호한데다 일부는 일상적인 안전관리로도 대응 가능한 사업이라, 교부 기준의 자의성과 중복 편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11일 나라살림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4년 특별교부세 재난안전 수요 가운데 재난 피해 복구에 사용된 예산은 전체의 14.4%에 그쳤고, 나머지 85.6%는 예방사업에 사용됐다”며 “하지만 예방사업 중 상당수는 지역현안 사업과 유사하거나 상시 관리로도 가능한 사안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2024년 재난안전 수요 사업 총 2098건 중 복구 목적은 111건(1287억원)으로 14.4%였으며, 나머지 1987건(7649억원)은 예방 목적이었다. CCTV 설치, 물놀이 사고 예방, 자전거도로 정비 등은 자연재해 등 예기치 못한 재난 대응보다는 평상시 안전관리에 가까운 성격이 강했다.

[나라살림연구소 제공]
[나라살림연구소 제공]

보고서는 “특히 CCTV 설치 사업만 184건, 525억원에 달했는데, 이는 범죄 예방이나 교통안전 개선 등 지역현안 수요로도 편성 가능한 항목”이라며 “재난안전 수요로 분류되기엔 적절성에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또한 재난안전 수요와 지역현안 수요 간의 중복성도 도마에 올랐다. 예컨대 동일한 ‘지하차도 진입차단시설’ 설치 사업이 재난안전 수요와 지역현안 수요로 각각 편성된 사례가 있었고, 노후 시설물 정비 사업 등도 양측 수요에서 유사하게 반복 편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나라살림연구소 제공]
[나라살림연구소 제공]

연구소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치적 수요나 예산소진을 위한 편성이라는 의심을 낳는 대목”이라며 “재난안전 수요는 말 그대로 ‘예기치 못한 재정 수요’일 때 교부돼야 한다는 원칙이 무색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말에 편중된 교부 시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전체 재난안전 수요 예산 중 47.6%(4255억원)가 12월 한 달에 집중됐다. 이는 통상적인 연말 예산소진과정과 맞물려, 사업 긴급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재난 예방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난안전 수요 항목에 걸맞은 사업만을 엄격히 선별해 지원해야 한다”며 “현재와 같이 모호한 기준으로는 특별교부세가 정치적 도구나 지역예산 확보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연구소는 ▷특별교부세 전체 규모 축소 ▷재난안전 수요의 세부 교부 기준 정비 ▷지역현안 수요와의 중복 방지 장치 마련 ▷교부 과정의 정보 공개 확대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fact0514@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