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서강희 음악 조감독, 테크니션 이중민

위험천만 라이브 무대, 돌발상황 대비 철저

기타 깨지고 줄 끊어져도 공연은 계속되는 이유

뮤지컬 ‘원스’의 ‘골드(Gold)’

뮤지컬 ‘원스’에서 ‘골드(Gold)’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조감독님, 악기가 좀 깨졌어요.”

무대가 한창이던 시간, 뮤지컬 ‘원스’의 서강희 음악 조감독은 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날은 ‘비번’이었다. “배우가 피아노에서 뛰어내리다 기타가 깨졌다”는 전화였다.

“농담 삼아 ‘그러면 접착제로 붙여서 하면 되겠네요’라고 이야기했더니, 상황이 금세 심각하게 돌아가더라고요. 한 번 봐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좀 깨졌다’는 악기의 상태를 확인하고 서강희 조감독 역시 적지 않게 놀랐다고 한다. “막상 보니 걸레짝이라고 해도 될 만큼 박살이 났다”는 것이다.

2007년 개봉한 동명의 아일랜드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원스’(5월 31일까지, 코엑스 아티움)는 낯선 두 남녀가 만나 ‘음악’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전문 연주자로 구성된 대규모 오케스트라 대신 12명의 배우가 기타, 피아노, 바이올린, 만돌린, 드럼, 첼로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한다.

배우들은 1년에 걸쳐 무대 준비 기간을 가졌다. 뮤지컬 ‘원스’의 음악 캡틴 역을 맡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의 액터 뮤지션 고예일과 오래도록 첼로를 연주하다 배우로 전향한 곽희성 등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초보’에 가까운 실력이었기 때문이다. 완성된 무대에서 배우들은 직접 연주와 노래와 춤, 연기까지 하며 진정한 ‘멀티테이너’로 관객 앞에 선다.

뮤지컬 ‘원스’ 테크니션 이중민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원스’ 테크니션 이중민 [신시컴퍼니 제공]

완벽해 보이는 이 무대를 만들기 위해 공연 전부터 무대 뒤는 분주하다. 전문 연주자가 아닌 만큼 각종 돌발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원스’에서 악기 테크니션을 맡고 있는 기타리스트 이중민은 “기타 줄이 끊어지는 것은 기본이고 예상치 못한 상황들도 많다”고 말했다. 기타가 ‘박살’난 것도 마찬가지다.

뮤지컬에서 모든 악기를 구매하고 관리 중인 이중민은 혹시 모를 파손을 대비해 여분까지 악기를 구매해 뒀다. 무대에 올라가는 최대 악기 수는 29대이나, 제작팀이 보유하고 있는 총 악기는 39대다.

깨져버린 기타는 수리는 가능하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서 조감독은 “기타의 수리 비용과 구매 비용이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웃었다.

음악이 스토리이자 대사이며 감정이고 정서인 뮤지컬인 만큼 ‘원스’에선 각각의 곡마다 사용하는 악기의 종류와 개수도 달라진다. 가장 많은 악기가 사용되는 곡은 ‘원스’의 상징 같은 ‘폴링 슬롤리(Falling slowly)’와 ‘노스 스트랜드(North strand)’다. 두 곡에선 각각 12개의 악기가 쓰인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넘버(노래)는 총 16개. 두 사람은 “각각의 곡마다 모든 악기의 튜닝이 달라진다”며 “각 곡마다 장르가 다르고, 두드러지게 들려줘야 하는 음색이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정교하게 구성된 음악이기에 라이브 연주에서 벌어질 수 있는 변수를 고려한 무수히 많은 프리셋(preset, 사전 설정값)도 만들어졌다. 연주 장면부터 무대 위 동선, 악기 교체 과정, 줄이 끊어지는 상황을 대비한 연주자 교체 순서까지 정해져 있다.

뮤지컬 ‘원스’에서 가이 역을 맡은 한승윤과 서강희 음악 조감독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원스’에서 가이 역을 맡은 한승윤과 서강희 음악 조감독 [신시컴퍼니 제공]

모든 배우가 함께 부르는 넘버인 ‘골드’ 직전은 특히나 분주한 상황이다. 이 곡에선 ‘가이’가 데모 CD를 녹음하는 스튜디오 대표인 이먼(Eamon)과 가이가 노래하는 펍의 MC인 엠씨(Emcee)의 기타 튜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중민 테크니션은 “그전까지는 정튜닝을 쓰다 ‘골드’ 전용 튜닝인 변칙 튜닝으로 바꾸기에 그때마다 ‘제발 (줄이) 끊어지지 마라’고 주문을 외면서 튜닝한다”고 말했다. 보통 기타는 ‘미라레솔시미’ 순서로 튜닝을 하나 변칙 튜닝을 쓸 경우 ‘골드’는 ‘미시미미시미’, ‘세이 잇 투 미 나우(Say it to me now)’는 ‘미시미솔샵시미’로 튜닝한다. 서 조감독은 “변칙 튜닝을 할 경우 ‘골드’에선 왼손 손가락 움직임이 더 쉽고, 울림이 구성되는 음들이 달라져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귀띔했다.

기타 줄이 끊어지는 상황은 숱하다. 각 넘버마다 기타 줄이 끊어질 경우 대체할 멤버도 정해져 있다. ‘골드’에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음악 진행 도중 배우 중 한 명이 도중에 끼어들어 연주를 함께한다. 서 조감독은 “아직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지만 누가 들어오라고 정해두지 않은 만큼 모두가 연주에 참여할 수 있다”며 “그렇게 된다면 그것대로 100회의 공연 중 가장 의미 있고 재밌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웃었다.

뮤지컬 ‘원스’에서 ‘골드’를 부르는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뮤지컬 ‘원스’에서 ‘골드’를 부르는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다만 대체 불가능한 상황도 있다. ‘가이’가 부르는 ‘세이 잇 투 미 나우’가 그렇다. 이 곡은 록 넘버인 만큼 연주가 강렬해 줄도 잘 끊어진다. 이중민 테크니션은 “가이의 솔로곡인 만큼 스페어 악기가 들어갈 수 없어 끊어지면 끊어진 채로 연주를 해야 하는 곡”이라고 귀띔했다. 도저히 연주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막장 드라마에 환장하는 체코 이민자 스벡이 대신 연주를 하고 ‘가이’는 핸드싱크를 한다. 아직까지 그런 상황은 없었다.

‘원스’의 모든 음악을 진두지휘하는 두 사람의 최애곡도 따로 있다. 모든 곡을 ‘내 새끼’처럼 애지중지 하나 이중민 테크니션은 ‘리브’를, 서강희 조감독은 ‘골드’를 꼽았다.

이중민 테크니션은 “영화 ‘원스’으 오프닝 장면을 정말 좋아한다. 가이와 걸이 거리에서 만나 말을 거는 첫 만남인데 뮤지컬과는 비슷한 내용이나 장면은 다르게 연출됐다”며 “그 때 영화에선 ‘세이 잇 투 미’가 나왔지만 우리 뮤지컬에선 ‘리브’가 등장한다. ‘리브’와 첫 장면이 무척 잘 어울린다”고 했다.

서 조감독은 “걸에게 떠밀린 가이가 펍에서 혼자 노래를 부른 뒤 관객처럼 앉아 있던 배우들이 한 명 한 명 마법처럼 악기를 얹고 코러스를 입히며 노래하는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없다”며 “바이올린이 일어나 라인을 만들어주고 뒤돌아 연주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짓는 표정을 보면 이게 바로 ‘원스’를 풍성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느껴진다”고 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