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 가는가
조너선 케네디 지음
조현욱 옮김
아카넷
균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 가는가 조너선 케네디 지음 조현욱 옮김 아카넷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武漢)에서 처음 발견됐을 때에만 해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선 남의 나라 얘기로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새로운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하며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자 인류는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작은 ‘균’ 때문에 인류는 외출을 자제하고,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는 등 집에만 갇혀 살았다. 덕분에 재택근무와 온라인 소통이 익숙해지고, 위생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는 등 우리의 인식과 생활 방식을 바꿔 놨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인간 사회의 운명을 바꾼 세 가지 요인으로 총·균·쇠를 꼽았지만, 조너선 케네디 영국 런던퀸메리대 교수는 ‘균·균·균’이라고 말한다. 케네디의 신간 ‘균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어 가는가’는 균이 총칼보다 더 치명적이라고 강조한다.

17세기 처음 미생물이 발견된 이후로 연구자들은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이 작은 존재들이 단순히 질병·부패·죽음을 일으키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모든 형태의 복잡한 생명체의 본체가 됨을 깨닫는다. 저자는 “지구는 박테리아의 세계이고 우리는 거기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무수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역사 전체에 걸쳐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가고 문명을 무너뜨렸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세상이 등장하는 계기 역시 함께 만들었다. 여러 종의 인간이 살던 행성을 호모사피엔스가 지배하는 행성으로 바꿨고, 떠돌이 수렵 채집 사회를 정착 농업 사회가 대체하게 했다. 대제국들을 멸망시키고,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변화시키고,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이끈 데에도 미생물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전염병은 이주민들이 원주민을 멸종시키고, 식민지를 정복하는 데 최고의 무기가 됐다. 이주민들은 어느 정도 면역력이 있었지만, 저항력이 없는 원주민들에겐 새로운 병원균이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전쟁의 판도를 바꾸기도 했다. 1800년대 초 나폴레옹은 생도맹그를 재정복해 프랑스 제국을 북미로 확장하기 위한 거점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모기로 인한 황열병으로 군사들이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가 그 계획을 포기했다. 아이티 반군과 모기에게 프랑스가 패배한 것은 근대 세계가 지금 같은 형태를 갖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균은 영국 등 여러 선진국에서 공중 보건을 발전시키고 백신을 개발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많은 개발도상국에선 아직도 비위생적인 환경과 전염병으로 매년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책은 고소득 국가와 저소득 국가 간 기대수명의 차이와 백신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이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질병으로 사망하도록 하는 국가 ·기업의 이기심을 지적한다. 1970~1980년대 미국과 영국이 세계보건기구(WHO)에 자금 지원을 줄이면서 저소득 국가들은 전염병과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아울러 빈곤층이 심혈관 질환, 암, 당뇨병 등 비전염성 질병에도 더 잘 걸린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부 역학자의 주장처럼 이러한 질병은 ‘사회적 전염병’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곧 보건 혁신이라고 제언한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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