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의 오판이 불러온 12·3 계엄사태 후폭풍이 결국 대선정국을 최악의 혼돈까지 몰고갔다. 국민들은 사법부가 사실상 ‘유죄’라고 판단한 유력 대선 주자와, 파면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 후보 중에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출마를 선언했고, 다음 ‘대통령 대행’ 순번인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는 사퇴했다. 행정·입법·사법기관이 모두 ‘초유의 결정’으로 불확실성을 키웠다. 권력자와 최고 국가기관이 무책임하게 던져놓은 결정을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수습하는 일은 다시 국민의 몫이 됐다.

대법원은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2심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이 후보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2심은 전부 무죄를 받았다. 1심엔 2년 2개월, 2심엔 4개월, 3심엔 36일이 걸렸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건이 배당된 지난달 22일 직권으로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9일만에 판결을 끝냈다. 대선을 임박해 유력 후보의 유·무죄 판단이 바뀌었고, 3심은 초고속으로 진행됐다. 모두 처음 있는 일로 ‘사법의 정치화’라는 논란이 빚어졌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선거개입이자 쿠데타”라며 ‘탄핵’으로 맞섰다. 이날 국회 본회의를 열어 최 부총리에 대한 탄핵안 표결에 들어갔으나 최 부총리가 직전 사퇴했다. 민주당은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안도 발의했다.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의 사법화’가 정면으로 충돌한 반나절이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선일까지 이 후보에 대한 서울고법의 환송심 판결은 가능하고, 대법원 재상고심까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일 이 후보가 당선되고, 임기 중 대법원이 ‘당선 무효형’으로 최종 판결하면 대통령 불소추특권을 규정한 헌법 84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해야 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아예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를 적시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에 나서겠다는 태세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으나 민주당은 “국민만 믿고 당당하게 가겠다”며 일축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대선이 온통 이 후보의 유·무죄와 자격 논쟁으로 도배되는 것이다. 그래선 안된다. 모든 정당과 후보들은 법과 국민의 뜻 모두를 현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당은 판결을 수용하고, 국민의힘은 이 후보의 자격시비를 오로지 법 절차와 유권자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국난 극복과 미래 비전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법과 제도로 규정한 모든 절차를 지키며 한발씩 전진하는 것은 늘 피로하고 지난한 일이었지만, 그 때마다 가장 창의적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헤쳐온 것은 우리 국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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