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랑데부’로 두 번째 무대 도전
샤이니 민호에서 배우 최민호로 변신
매주 수요일 짜장면 먹으며 인물 탐구
B구역 2열 14번, 민호와 소개팅 연기
![연극 ‘랑데부’로 두 번째 무대에 도전한 최민호 [SM엔터테인먼트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30/news-p.v1.20250430.3b9321b3933b4dbe8459f392ca06e3cd_P1.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MBTI로 치면 극T(이성형)에 완벽한 계획형이 우주 과학자.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밀하게 준비했다. 지독한 강박형 인물, 식사마저 루틴을 가진 남자. ‘즉흥’의 삶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 그에게 다가서기 위해 최민호(32)는 그동안엔 해보지 않은 일상을 만들었다.
“태섭이라는 인물에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어 연극 연습 기간부터 두 달 반째 수요일마다 짜장면을 먹고 있어요. 화요일마다 ‘내일은 짜장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 처음엔 반쯤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그 덕분에 태섭과 더 친해진 기분이에요.”
도쿄돔부터 K-팝 성지 케이스포돔까지…. 수만 명의 관객 앞에 서는 것으로 삶의 절반 이상을 보내온 ‘샤이니 민호’가 ‘배우 최민호’로 무대에 섰다. 이번이 벌써 두 번째. 지난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로 데뷔한 이후 만난 작품은 ‘랑데부’(5월 1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최민호는 “인물을 더 깊이 이해하고 연기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나만의 ‘루틴’을 만들고,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지우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며 긴 연습 과정을 떠올렸다.
최민호가 연기하는 태섭은 ‘슈퍼 계획형’ 인물이다. 가요계에선 소문난 ‘열정의 아이콘’이고, ‘성실함의 상징’이면서 심지어 건실하기까지 한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의 대명사 격이나, 실제의 그는 ‘P(무계획, 즉흥)형의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연극을 준비하는 기간부터 계획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공연이 있는 날엔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양말도 오른쪽부터 신는 식으로 ‘루틴’을 무조건 지키고요.”
최민호에게 ‘랑테부’는 시기적절하게 찾아온 ‘선물’이다. 연극은 지난해 박성웅 문정희, 최원영 김효주 주연의 작품으로 초연, 독특한 형태의 2인극으로 주목받았다. 애초 40대 남녀가 사랑에 다가서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었으나, 최민호의 캐스팅으로 연령대는 확연히 낮아졌다.
![연극 ‘랑데부’로 두 번째 무대에 도전한 최민호 [SM엔터테인먼트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30/news-p.v1.20250430.24efb9c6035845878eadc1ebfa0facca_P1.jpg)
그는 “선배님들과 나이 차가 있어 이 작품이 나한테 왜 왔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며 “동화 같으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 아픔과 슬픔이 공존하는 대본에 무척 끌렸다. 나도 이런 인물을 표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30대 초중반에 이 작품을 만나지만 이후 40대, 50대가 됐을 땐 또 어떤 저만의 사랑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지는 작품이에요. 그 시간 동안의 삶의 경험이 대사의 결을 달리 만들 것 같아요. 30대, 40대, 50대, 60대에 이 작품을 꾸준히 해보는 것이 저의 소소한 목표예요.”
‘랑데부’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그 어떤 것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걸음걸이와 숨 쉬는 시점까지도 계획하고 연습했다. 그는 “언제 숨을 쉴지, 등장할 때 걸음걸이를 어떻게 할지까지 생각하며 연기했다”며 “이 대사에 숨은 의미를 하나하나 찾아내고 의미를 파고들면서 한 겹씩 더 대사를 단단하게 했다”고 말했다.
완벽주의자 태섭을 만나며 인간 최민호도 조금씩 그를 닮아갔다. 열정 만렙의 그 역시 “스스로에게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 완벽추구형 인간”이다. 하지만 스스로는 “원래는 둥그런 완벽주의였다면, 태섭을 만나 네모반듯한 완벽의 지점에 다가서고 있다”고 했다.
첫 연극에서 배우 이순재와 호흡을 맞춘 것이 그에겐 엄청난 배움이 됐다. 발음과 대사 전달력에 대한 이해와 고민은 배우로서 기본기를 쌓고 성장의 밑거름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원체 대사가 많은 2인극인 만큼 정확한 대사 전달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긴 대사를 할 때는 AI가 된 것 같다”며 웃었다.
“딱딱하게 들리거나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도 어떤 대사는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점, 그래야 배우들이 호흡을 주고받아 자연스럽게 풀어갈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셨어요.”
![연극 ‘랑데부’로 두 번째 무대에 도전한 최민호 [SM엔터테인먼트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30/news-p.v1.20250430.d2cb05501dda48d48a6cd7f37ab3811e_P1.jpg)
연극은 태섭과 지희의 첫 만남, 운명 같은 우연으로 묶인 두 사람이 서로를 치유하고 이해해 가는 과정을 담는다. 가슴 아픈 가정사로 강박증에 생긴 태섭은 매주 수요일, 같은 시간에 짜장면을 먹으러 간다. 그러다 ‘달라진 짜장 맛’에 중국집 사장과 싸우며 인연을 맺는다. 한 줄로 정리하면 “과학자와 중국집 사장이 싸우다 정드는”연극이다. 2인극으로 두 명씩 짝을 이뤄 무대에 선다. 최민호는 배우 김하리와 호흡을 맞춘다.
두 사람은 첫 만남이지만 제법 잘 어울린다. 지희의 취중 장면에서 태섭은 그에게 비욘세부터 마이클잭슨의 춤을 시킨다. 관객의 ‘웃음 포인트’다. 매 무대 영화, 만화, 스포츠까지 캐릭터가 달라진다. 무대에 오르기 전엔 “애드리브로 미리 맞춰보고 (상대 배우에게) 춤도 가르쳐준다”고 했다. 샤이니 멤버들이 오는 날엔 ‘샤이니’ 춤이 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멤버들을 기다리며 아껴뒀다”고 한다. 두 번째 무대에 두 번째 2인극이나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최민호는 “이순재 선생님과의 2인극에선 제가 리드를 너무 많이 당했다면, 이번엔 함께 호흡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패션쇼 런웨이를 연상시키는 무대는 관객과 초밀착 교감을 지향한다. 길이 17m, 폭 2.5m 직사각형의 무대를 중심으로 양쪽에 관객석이 앉는다. 배우들은 관객들에 둘러싸여 연기를 해야 한다. 수만 명의 관객 앞에 서온 K-팝 스타에게 소극장 무대는 오히려 더 부담스럽다. 최민호는 “제 앞에도 뒤에도 관객이 있고 숨을 곳이 없어 너무 어렵다”며 “대신 그만큼 공연을 한 번 할 때마다 성장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관객 참여 무대도 있다. 두 배우가 연기하는 소개팅 장면에서다. 그는 “관객 한 사람을 정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대사를 하는데, 초반엔 다들 굉장히 당황해하셨다”며 “한 분은 갑자기 하트를 만들어 보여 흔들릴 뻔했다”고 고백한다. 최민호가 찜해둔 자리는 B구역 2열 14번이다. 이미 ‘소개팅 눈맞춤’ 좌석으로 소문이 쫙 퍼졌다.
데뷔 초장기였던 2010년부터 드라마와 영화 연기를 해온 그는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은 아주 오래된 꿈”이라고 했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라이브의 매력과 관객들의 반응을 곧바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을 끌어당겼다”고 한다.
“무대에 오르면 이유 없이 너무 떨려요. 실수한다고 해서 지구가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처음엔 알게 모르게 정신과 몸이 긴장한 것 같아요. 그런 긴장감을 좋아하는 편이라 떨면서도 헤쳐 나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은 스스로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순 없을 것 같아요. 저한텐 짠 편이라서요. (웃음)”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