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화 기자]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꾸 치다 보면 계란이 닭이 되어 바위를 넘을 날이 오지 않을까요?

아우디폭스바겐을 상대로 소비자들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문득 영화 ‘변호인’의 명대사가 떠올랐습니다.

‘기업 대 개인’. 막강한 기업 권력 앞에 개인 한 사람, 한사람은 약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유달리 경제력이 기업에 쏠린 우리나라 현실에서 개인이 기업을 상대하는 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빗댈 만큼 무모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가만 있자니 당한 소비자로서는 땅을 칠 노릇입니다. 지난달말 배출가스 인증 조작으로 아우디폭스바겐 브랜드 32개 차종 80개 모델에 대한 인증 취소와 판매정지 처분이 내려지자 중고차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사태가 무더기 판매 정지로 귀결되면서 폭스바겐 차값이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절반까지 하락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가 나빠지고, 사후 정비 서비스가 차질을 빚을 거란 우려가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는 겁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국에서 17조원을 손해 배상한 폭스바겐이 아직 우리나라에선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정부 정책에도 문제가 있다는 방증입니다. 이번 폭스바겐 사태를 지켜보면서 정부가 분배 대신 성장, 소비자 보다는 기업 위주의 정책을 펴온 것이 이번 사태를 자초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비자를 봉으로 아는 뒤틀린 기업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데, 소비자들이 가만히 있는다면 제2, 제3의 폭스바겐이 나오지 말란 법 있을까요? 이 시점에서 만약 폭스바겐이 아니라 현대ㆍ기아차 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아마 소비자 대책에서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란 게 기자만의 생각일까요?

우리나라는 급발진 의심 사고 관련 소송에서 지금까지 운전자가 이긴 경우가 없었습니다. 법적 구조상 운전자가 자동차의 결함을 밝혀야 하는데, 일반인에게 그것은 불가능이나 다름없습니다.

지난 3일 부산 감만동에서 발생한 싼타페 추돌사고의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되면서 정황상 급발진이 의심되지만 운전자 과실로 급하게 마무리될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히 떠도는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현대차가 급발진 사고로 소비자에게 피해 보상을 한 사례는 단 한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지난 2005년 서울대를 방문, 주차하던 김영란 전 대법관(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의 에쿠스 차량이 후진을 하다 급발진 사고가 나자 현대차는 진상 조사를 벌여 역시나 ‘100% 운전자 과실‘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후 현대차는 현대캐피탈을 통해 소송도 하기 전에 김 전 대법관에게 사고 차량보다 배기량이 500㏄ 더 큰 3500cc 신형 에쿠스를 줬다고 합니다.

이렇다보니 힘없고 ‘빽’ 없는 소비자들의 대항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특히 폭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기업이 악의적으로 불법 행위를 한 경우 피해자에게 끼친 손해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순순히 책임을 인정하고 17조원 규모의 배상안을 내놓은 것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하도급거래 등 일부 불법행위에 대해서만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적용됩니다. 대상이 제한적이라 실효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런 한계를 보완한 ‘징벌적 배상법’ 제정안을 지난 6월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은 의도적으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기업에는 최대 3배까지 배상금을 물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제2, 제3의 폭스바겐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회는 입법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