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의 위기를 말한다.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 등 패러다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삼성전자는 AI의 핵심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서 대만 TSMC에 치이는 신세가 됐다. 압도적 선두였던 범용 D램에서는 중국 업체에 턱밑까지 쫓기는 형국이다. 주력인 반도체 부문뿐만 아니라 TV, 가전, 스마트폰 등 완제품 부문에서도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삼성 위기론이 비등점에 이르자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임원들을 향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죽느냐 사느냐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며 강도높은 쇄신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 비장함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뼈를 깎는 혁신을 주문했던 고(故) 이건희 선대 회장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방불케 한다.

이 회장은 “전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며 “과감한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은 찾아볼 수 없고, 판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고 질책했다. 또 “21세기를 주도하며 영원할 것 같았던 30개 대표 기업 중 24개가 새로운 신 기업에 의해 무대에서 밀려났다”며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인류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 혁신이 지속되는 국가 총력전의 양상이 펼쳐지는데, 우리 경제와 산업을 선도해야 할 삼성전자는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라는 반성도 있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메시지는 지난달 말부터 삼성이 계열사 전 임원 2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 세미나에서 영상을 통해 전달됐다.

삼성이 K반도체를 글로벌 1등으로 만든 원동력은 잘 나갈 때 자만하지 않고 초격차 기술 개발에 매진한 데 있다. “5년, 10년 후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앞으로 10년 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등 이건희 선대회장의 어록들은 한결같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빛의 속도로 바뀌는 기술 변화에 대응하라는 질책이었다.

삼성은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임원들에게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란 글귀를 새긴 명함 크기의 크리스탈패를 하나씩 나눠줬다. 삼성 특유의 ‘위기극복 DNA’를 일깨우기 위함일 것이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판을 바꾸자”는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인재제일, 초격차 기술력, 효율적 컨트롤 타워 등 삼성다움을 복원하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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