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 수괴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공소장 내용이 드러나면서 다시 한번 황당해진다. 12.3 비상계엄으로 그가 꿈꾼 나라는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가산제 국가’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모든 국가 권력이 개인의 가산처럼 사유화되는 망상에 사로잡힌 계엄 포고령과 후속 지시들이었다.
19세기 정치사회학자 칼 할러와 막스 베버가 개념화한 가산제 국가에서는 국가 재산과 관료들이 지배권자 1인의 사적 소유로 간주된다. 공공 행정도 마치 개인의 가정사처럼 처리된다. 이는 전근대 봉건사회에서 절대주의 국가로 넘어가는 교량적 체제로 상정된 개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통치권자가 그런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 국제사회에 알려질까 봐 두렵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눈엣 가시 같은 언론사들에 전기와 수도를 끊으라고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게 지시한 뒤 경찰과 소방청에 확인 전화를 했다는 공소장의 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는 비인간적인 악행이 아닐 수 없다.
12.3 비상계엄과 그 후속 지시들 중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법원의 내란죄 형사재판에서 다뤄야 할 핵심 사안은 몇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윤 대통령 자신이 말하는 “국민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비상계엄의 헌법상 요건인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와는 거리가 멀다.
둘째, 국회에서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누가 내렸는지, 중앙선관위 인력과 서버 장비를 침탈했는지 등이 매우 중요한 내란죄의 판단 요건일 것이다. 끌어낸 의원들을 방첩사 구금시설이나 수방사 지하 벙커에 수용하기 위해 시설 점검까지 했다는 진술에 대해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셋째, 주요 정치인과 법관, 언론인 등 14~16명과 이른바 “반국가세력”을 싹 다 잡아드리기 위한 체포 지시와 체포조 운영을 누가 어떤 기구에 하달했는지 밝혀야 한다. 윤 대통령과 그 지시 전화를 받은 홍장원 국정원 전 1차장과 여인형 방첩사령관 및 군·경찰 지휘관들이 법정에서 대질해 진실을 가리면 될 일이다.
넷째, 비상계엄 전부터 평양에 무인기 침투와 북한의 오물풍선 발원지에 대한 타격 지시를 내려 남북간 전쟁 발화까지 감행하려 기도했는지 진상을 엄정하게 규명해야 한다. 외환죄 혐의 수사대상일 것이다.
다섯째, 이른바 “국가비상입법기구”를 설치하라는 지시와 예산 지원 메모에 대해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이는 전두환 일파의 1980년 내란 당시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흉내낸 판박이다. 이같이 내란의 흑역사가 재발하고 반복되는 것은 그 주범조차 사형선고가 결국 사면으로 끝나고 역사적 교훈이 되기는커녕 사망할 때까지 사죄 사과 한마디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윤 대통령이 내란 수괴 혐의로 체포 구속된 후 사회원로들의 호소가 발표됐다. ‘내란과 탄핵을 넘어 희망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갑시다’라는 제목의 호소문에 대학총장 출신과 원로 종교인, 언론인, 문화인 등 398명이 연명으로 참여했다. 국민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마음속에 기댈만한 원로들의 호소는 타는 목마름을 적셔주는 약수와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호소문의 신속한 탄핵과 내란죄 엄정 단죄는 다른 단체들과 차이가 없으나 사회대개혁과 새로운 미래를 천명한 것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서울디지털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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