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4일(현지시간)부터 캐나다산 에너지류에 10%, 그 외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 멕시코산에는 예외없이 25%의 관세를 물린다. 중국산에 대해선 10%의 추가 관세를 붙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1일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른 것이다. 해당 국가들은 즉각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보복관세 등의 반격 방침을 밝혔다. 세계 각국이 공격과 보복을 무한반복하는 통상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 경제에는 전방위 타격이 우려된다. 글로벌 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공도동망의 길이라고 한탄만 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기업과 정부가 따로 움직여선 감당할 일도 아니다.
멕시코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전과 TV 공장을, 기아가 자동차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트랜시스도 생산 공장을 이곳에 두고 있다. 멕시코와 함께 미국과 맺은 3국간 자유무역협정(USMCA) 회원국인 캐나다는 북미 최대 핵심 광물 생산지로 배터리·전기차 관련 한국 기업에 거점이 돼 왔다. LG에너지솔루션과 스텔란티스의 합작공장이 배터리 모듈을 양산하고 있고, 포스코퓨처엠은 제너럴모터스(GM)과 함께 배터리 양극재 합작공장을 현지에 짓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가 한국의 가전·배터리·자동차 산업에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하면서 “조만간 반도체, 철강, 제약, 석유, 가스 등에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1419억달러(약 208조원)로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했다. 대미 반도체 수출도 106억달러(약 15조원) 규모였다. 반도체는 1997년 발효된 WTO의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회원국간 거래에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으나 미국이 이를 뒤집으면 칩 가격이 상승하고 한국산 경쟁력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미국의 고(高)관세는 한국 산업 뿐 아니라 외교·안보에도 악재다. 트럼프 정부는 외교·안보와 경제·통상 사안을 상호 지렛대로 활용하는 정책을 공공연하게 표방해 왔다. 당장 주한미군과 방위비분담금, 대북정책 등을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활용해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정책에 월스트리트저널은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무역전쟁”이라고 했지만, 이런 비판조차 미국 언론에서나 부릴 법한 사치다. 우리 각 기업은 미국 내에 생산 시설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을 모색하고 있으나 각자도생으로선 ‘피아 없는’ 관세전쟁에서 살아남을 재간이 없을 것이다. 기업과 정부·국회가 머리를 맞대 전략을 짜고, 민관과 노사가 한몸으로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