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C] 8월15일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소중한 목숨마저 아낌없이 버린 독립운동가의 삶에 더욱 시선이 가죠. 이들 독립운동가를 소재로 한 전시회가 대구 갤러리소헌(중구 봉산문화길 34)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강기훈 작가는 안동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 러시아 레핀아카데미를 거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석ㆍ박사를 수료했다. 그는 독립 운동가들의 모습을 캔버스에 기록했다. 중앙에 인물의 얼굴을 가득 채우고 그 위에 갈대발을 드리운 듯한 화면을 연출했다. 작가에 따르면 “갈대발 사이로 흐릿하게 비치는 독립 운동가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영웅들의 모습이다. 갈색톤의 단색조 그림은 마치 빛바랜 옛날 사진 같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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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고 194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에 선임되었다. 신민회, 한인애국단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김동삼
만주에서 신흥강습소를 세우고 민족유일당촉진회를 조직하여 위원장을 지냈다.
▶김좌진
1920년 10월 20~23일 청산리 80리계곡에서 유인되어 들어온 일본군을 맞아 백운평·천수평·마록구 등지에서 3회의 격전을 전개, 일본군 3,300명을 섬멸했다.
▶김지섭
의열단에 가입했고, 상하이·베이징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제국의회에 참석하는 일본고관들을 저격하려 했으나 제국의회 무기한 연기로 계획을 변경하여 일본 궁성의 니주바시에 폭탄 3개를 던졌다.
▶김진만
1910년대 대표적인 국내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광복회 회원으로 활약했다. 대한광복회는 무기비축과 군자금수합을 당면과제로 하여 ‘비밀·폭동·암살·명령’을 행동강령으로 삼고 있었다.
▶서상돈
1898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러시아의 내정간섭을 규탄하고 민권보장 및 참정권획득 운동을 전개했다. 1907년 대구의 광문사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의하고 국채보상취지서를 작성 발표했다.
▶윤봉길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치르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총살됐다.
▶이상룡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간도로 망명하여 신흥강습소, 부민단 등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힘썼다.
▶이육사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청포도‘,‘교목’ 등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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