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납량물 원조 ‘전설의고향’ 구미호·처녀귀신 등 토종귀신 표본화 실감나는 분장에 심신쇠약자 실신도 90년대 드라마‘ M’ 초록눈의 전설심은하 주연 공포스릴러물 신호탄役 예능 프로그램으로 공포체험 확장 2000년대 공포의 마지막 시대 ‘RNA’ ‘혼’이어 ‘구미호:여우누이뎐’등 다양한 형태로 ‘온전한 공포’ 연출 2010년대 변주된 귀신 오싹한 공포 대신 멜로·코믹 섞어 뱀파이어 등 변종 서양귀신도 등장
‘오싹한 공포’가 사라졌다. 구천을 떠돌고, 악귀가 돼 인간을 해하는 귀신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정통 공포물은 사라지고, 변주된 복합장르가 각광받는다. 요즘 시청자들은 초현실적인 귀신이야기가 주는 공포에 이입하지 않는다. 허구의 장르에서도 ‘현실성’을 찾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범죄 스릴러에 더 큰 공감대가 쌓인다. 2016년의 첫 귀신이야기인 옥택연 김소현 주연의 tvN ‘싸우자 귀신아’ 역시 귀신은 등장하지만 코믹을 섞은 복합장르다. 박준화 PD는 “드라마 속 귀신들의 스토리에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의 포인트가 담겼다”며 “성희롱 가해자였던 사람이 귀신이 됐다는 설정 등 현실의 부조리를 극 안에서 퇴마의 형태로 풀어 통쾌함을 주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1980년대 ‘전설의 고향’의 시대=납량특집 드라마의 원조는 뭐니 뭐니 해도 ‘전설의 고향’(KBS2)이다. 1977년 첫 방송된 ‘전설의 고향’은 한반도 전역에서 내려오는 전설과 민담을 줄기로 삼아 한국형 귀신의 표본을 보여줬다. 1989년까지 12년간 무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에만 안방을 찾았다. 이후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여름에 재등장했고, 2008년부터 2009년까진 진화한 컴퓨터그래픽과 특수분장으로 실감나는 귀신들을 선보인 뒤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다.
드라마에선 다채로운 한국 귀신들이 등장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구천을 떠도는 억울한 영혼들이 한을 풀기 위해 피눈물을 흘렸다. 한 쪽 다리를 잃은 귀신이 지나가는 행인의 다리를 붙잡고 “내 다리 내놔”라며 훅 들어오던 장면은 여름철 귀신이야기로 회자됐다. 전설의 고향’에서 최강의 비주얼을 자랑하는 귀신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귀신을 부르는 저주받은 책과 아들을 살리기 위한 지극한 모성애를 담은 이야기로, 화면을 뒤집어 등장한 귀신의 모습은 심신이 쇠약한 시청자가 보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였다.
▶1990년대 ‘M’의 시대…초록눈의 전설=1990년대엔 전통적인 한국형 귀신을 벗어난 납량특집 드라마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1994년 방송된 심은하 주연의 ‘M’(MBC)은 공포 스릴러물의 신호탄 격인 드라마였다. 병원을 배경으로 낙태를 소재로 삼은 드라마는 심은하의 악한 연기가 인기를 모았다. 귀신이 몸에 들어오면 눈이 초록색으로 변하고, 남자 목소리를 내는 청순한 여배우의 변신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1995년 방송된 ‘거미’(MBC)도 빼놓을 수 없다. 살인거미에 의한 죽음이 도시를 공포에 빠뜨린다는 스토리로, 드라마는 이승연이 1인 2역을 맡아 열연했다.
1998년 SBS에서 방영된 ‘어느날 갑자기’도 있다. 2부작 납량특집으로 방송된 드라마는 1995년 출간된 동명의 공포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드라마엔 반가운 얼굴이 나온다. 배우 이나영이 스티커 사진 속의 귀신으로 등장했다. 창백한 얼굴의 큰 눈으로 귀신의 비주얼을 완성했다.
1990년대의 납량특집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이어졌다. SBS ‘토요미스테리극장’(1997)과 MBC ‘이야기 속으로’(1999)다.
▶2000년대 ‘RNA’, ‘혼’…완벽한 공포의 마지막 시대 =2000년대에는 온전히 ‘공포’로 밀고 나가는 드라마의 마지막 시대였다.
2000년 방송된 KBS2 ‘RNA’는 초능력과 공포를 결합해 안방극장을 찾았다. 인간복제와 유전자 변형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 배우 배두나가 주인공을 맡았다. 유전자 변형 이후 다중인격이 된 주인공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다. 드라마는 당시 18%대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지난친 폭력 장면 묘사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2009년엔 MBC ‘혼’이 등장했다. 드라마는 억울하게 살해된 여고생 귀신이 여주인공 하나(임주은)의 몸에 들어오면서 진행되는 복수극이었다. 하수상한 시대에 등장한 공포물은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스토리로 마무리됐다.
2010년엔 ‘전설의 고향’ 속 단골 캐릭터 구미호가 16부작을 끌고 가는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KBS2 ‘구미호: 여우누이뎐’이다. 드라마는 구미호에게 딸이 있다는 설정으로 구미호의 모성애를 보여줬다. 한국형 귀신이야기의 확장편이다.
▶2010년대 변주된 귀신이야기=무섭기만 해선 안 된다. 변주된 귀신이야기가 등장했고, 서양 귀신이 습격한 시기다.
오싹한 공포를 버리고 멜로, 코믹과 섞은 SBS ‘주군의 태양’은 소지섭 공효진을 타이틀롤로 앞세워 인기를 모았다. 귀신은 등장하지만 섬뜩한 공포는 아니었다. 귀신을 보는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매회 에피소드 형식으로 귀신의 사연이 등장했다. 귀신의 사연은 공감대를 높이는 장치로, 그 사이에 피어나는 남녀주인공의 로맨스는 공포를 완화하는 장치로 쓰였다. 귀신들의 한층 진화한 특수분장이 인상적인 드라마였다.
같은 해엔 KBS2 ‘드라마 스페셜-기묘한 동거’, ‘엄마의 섬’이 여름을 겨냥한 귀신 이야기로 등장했다.
서양 귀신 ‘뱀파이어’의 습격도 이어졌다. 2015년엔 MBC ‘밤을 걷는 선비’, KBS2 ‘블러드’, ‘오렌지 마말레이드’와 같은 변종된 귀신이 등장했다. 공포로 내달리는 드라마들은 아니었다. 퓨전 사극이었고, 메디컬과 만난 스릴러였으며, 판타지물로 안방을 찾았다.
고승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