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둥=박영서 특파원]28일 김정일 위원장의 영결식을 맞아 북중 접경지역인 중국 땅 단둥(丹東)에서 목격한 애도의 모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단둥지역 분향소에는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북한관련 기관들의 조문 분위기도 식지 않았다. 단둥은 29일 추모대회를 끝으로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말의 불안감은 남아있다. 김정일 사후의 ‘시한폭탄’이 지금도 재깍재깍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막바지 조문분위기의 단둥=28일 오전 중국 단둥 시내 압록강변 류경호텔 21층에 위치한 주중 북한 선양영사관 단둥지부. 이 곳 2105실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여전히 발길이 이어졌다. 북한주민, 조선족교포, 북한화교, 중국인들이 부부끼리, 가족끼리, 아니면 직장동료끼리 꽃을 들고 애도를 표했다.

분향소 내부는 김정일 찬양글귀가 걸린 추모화환이 가득했고 뒤쪽에 젊은 시절 김 위원장 초상화로 만든 영정사진과 TV가 있었다. TV에는 김정일 사망을 전하는 조선중앙TV의 방송화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28일 북한 여성들이 단체로 단둥 류경호텔 앞에 마련된 김 위원장의 영결식장으로 가고있다. 조문객 중에는 부모를 따라 나온 어린이들의 모습도 보였다.\r\n 단둥=박영서 기자/pys@
28일 북한 여성들이 단체로 단둥 류경호텔 앞에 마련된 김 위원장의 영결식장으로 가고있다. 조문객 중에는 부모를 따라 나온 어린이들의 모습도 보였다.\r\n 단둥=박영서 기자/pys@

분향소 입구와 내부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관리요원들이 식을 진행하면서 조용하게 조문을 받고 있었다. 이 곳 분향소 관계자들은 말을 극도로 아꼈다. 어렵사리 말문을 열은 한 관계자는 “남쪽에서 왔냐”고 물어보더니 “시간에 관계없이 조문을 할 수 있으며 단둥 뿐 아니라 인근 도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러온다”고 말했다

이 곳을 찾은 한 북한 여성은 “단둥 인근 도시인 번시(本溪)에서 왔다”면서 “장군님(김정일)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보기위해 나왔다”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 곳을 찾는 조문객들은 북한에 들어가 조문을 하고 복귀했거나 처음부터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한 조문객에게 “단둥이 있는 북한사람들 모두에게 귀국령이 내려졌냐”고 물어보니 “공무원, 무역상사 간부급 정도들은 돌아갔지만 나머지는 단둥에 남아서 애도를 하고있다”고 말했다.

단둥 현지의 한 대북소식통은 “단둥에는 북한사람들이 500~600명 정도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데 귀국한 사람들은 100명도 안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사람 전부가 돌아갔다는 소문은 근거가 없다”면서 “현실적으로 이들 모두를 북한으로 수송할 교통수단이 없다”고 덧붙였다.

평양옥류관, 삼천리식당, 평양고려식당, 금강산식당 등 단둥의 북한 음식점도 아직까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고려식당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니 종업원들이 조용하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 안으로 들어가는 여종업원에게 “언제 문을 여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단둥 한인회 관계자는 “북한 음식점들이 29일 애도기간이 끝나는 날까지는 영업을 하지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란하고 분주한 곳도 있다. 바로 꽃가게다. 단둥에선 국화를 비롯한 조문용 생화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현지 수요는 물론 북한 수요도 엄청나 화훼업은 조문특수를 맞고있다. 평소 2~3위안했던 국화꽃 한다발은 지금 10~12위안에 팔리고 있다.

단둥에 체류하고 있는 북한 무역상이나 공무원, 단체들은 장례용품을 본국에 공급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례용품을 얼마나 많이 보냈는지가 충성도와 업무 능력을 재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대로 물건을 확보하는데 애를 먹고있다.

단둥에서 무역업을 하고있는 한 교민은 “아는 북한사람한테 검은 넥타이를 대량으로 살 수 있도록 좀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고 귀뜸했다.

27일에는 단둥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중조우의교를 통해 70여대의 화물트럭이 줄지어 중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장면이 목격됐다. 화물의 대부분은 윈난(雲南)성 쿤밍(昆明) 등 중국 남부에서 구입한 생화 등 장례용품일 것으로 추정된다.

단둥에 입항한 일부 북한 화물선이 영결식에 맞워 서둘러 북한으로 귀항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긴장감 도는 북·중 국경=영결식 때문에 27일이나 28일 닫힐 것으로 예상됐던 단둥~신의주 세관은 정상적으로 운영중이다. 중조우의교를 통한 북중 무역도 이제 정상화되고 있는 단계다. 사업차 최근 북한 청진을 방문했다는 조선족 교포는 “북한의 사회분위기가 매우 무겁다” 면서 “그렇지만 주민들은 평상시처럼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불만 붙이면 터질 것같은 긴장감은 웬지모르게 가시지 않는 느낌이다. 지난 27일 오후 압록강 단교 옆 공원에는 공안차가 2대 정차되어 있었다. 이들이 하는 말을 옆에서 들어보니 베이징에서 온 공안들이었다. 혹시 발생할 지 모를 돌발사태에 대비해 베이징에서 지원을 나온 공안들이었다.

최근 며칠전부터 중국 공안들은 취재중인 외국기자에 대한 취재제한 조치를 강화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다가 사진을 강제삭제당하거나 취재를 하다가 외부로 쫓겨나는 사례가 심심치않게 발생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접경지역에 군사력을 증강배치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김정일 사후 북중 국경지대를 통해 탈북난민이 대거 쏟아져나올 것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측도 경비를 강화했다고 한다. 중조우의교에서 기념품을 팔고있는 중국상인은 기자에게 “북한쪽 보초병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pys@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