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정리] 365일 날마다 크리스마스인 마을이 있다. 핀란드 로바디에미가 아니라, 경북 봉화군 분천산타마을이다.
2024년 12월 3~4일, 45년만에 계엄령 발동이라는 황당한 일을 겪은 우리 국민의 마음은 여전히 황황한데, 한 번 쯤 산타마을의 동화속에서 들어가 현실을 좀 잊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만약 국민이 막아내지 않았다면 산타마을 마저 계엄군이 진을 쳤을 것이라 생각하면, 아찔하다.
눈이 많이 내리는 봉화의 산타마을은 간이역인 분천역에 조성되어 있다. 동화 속 그림 같은 산촌마을 풍경과 365일 크리스마스 기분을 선사한다. 느릿느릿 기차를 타고 분천역에 내리면 겹겹이 둘러선 산을 배경으로 빨간 지붕의 아담한 역사가 서 있다. 역사 앞 광장은 계절에 아랑곳없이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다.
썰매를 끌며 달려가는 귀여운 루돌프 모형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빨간 코와 뿔이 달린 네 마리의 루돌프가 끄는 썰매에는 흰 수염에 빨간 옷을 입은 산타 할아버지도 보인다.
썰매에 올라타면 산타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광장 주변에는 갖가지 포토존이 줄을 잇는다. 익살스러운 산타, 알록달록한 기차, 하트로 꾸민 의자 등을 배경으로 즐겁게 사진을 찍다 보면 잊고 살았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역사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대합실이 반긴다. 빨간 벽면에 하얀 크리스마스 장식이 그려졌고, 빨강 체크 커튼이 달린 창가에 긴 나무의자가 놓였다. 셔터를 누르기만 해도 작품이 되는 포토존이며, 잠시 몸을 녹이고 쉬어 가기 좋은 장소다. 역사를 통과하면 V-Train과 무궁화호가 달리는 영동선 철길이 나온다.
역사 옆으로 여러 가지 체험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산타우체국은 산타복을 입고 사진 찍을 수 있도록 벽난로와 예쁜 인형으로 꾸며놓았다. 내년 크리스마스 때 엽서가 도착하는 노란 우체통도 보인다. 오랜만에 손글씨로 편지를 쓰는 여행객들 얼굴마다 잔잔하게 미소가 퍼진다.
분천산타마을의 사계절과 V-Train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분천 사진관, 자매결연을 한 스위스 체르마트를 상징하는 포토존, 루돌프 열차를 타며 즐기다 보면 겨울 하루가 짧기만 하다.
분천역 광장 아래로 빨간 지붕이 옹기종기 모인 분천산타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마을 곳곳에 맛집과 카페가 들어서 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어묵, 군고구마, 붕어빵 등 옛 추억을 떠올리며 몸을 녹일 수 있는 먹거리도 수두룩하다.
365일 한결같은 분천산타마을도 한여름과 겨울에는 축제가 열린다. 올겨울은 12월 21일부터 2월 16일까지 진행된다. 축제 기간에는 진짜 산타클로스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팝업 놀이터, 버스킹 공연, 크리스마스 음악콘서트, 산타 썰매, 이글루, 요정의 집 푸드코트 등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더 풍성해진다.
분천산타마을을 더욱 재미있게 즐기고 싶다면 백두대간협곡열차인 V-Train을 타보자. 분천역에서 양원역, 승부역을 지나 철암역까지 왕복하는 V-Train은 오직 기차로만 갈 수 있는 백두대간의 V자형 협곡 사이를 지난다.
V-Train의 V는 협곡을 뜻하는 Valley의 첫 글자이며, V자의 협곡 모양을 상징하기도 한다. 일반 열차보다 창을 더 크게 내고, 창을 향해 앉을 수 있는 특별석도 마련해 놓아서 협곡의 비경을 감상하기 제격이다.
기차는 양원역과 승부역에서 5분~10분씩 정차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사진을 찍거나 마을 주민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을 사고, 따끈한 어묵과 찐 옥수수 그리고 노릇노릇 부추전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 맛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양원역에 내리면 성냥갑만 한 역사가 서 있다. 1988년에 탄생한 양원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간이역이며, 마을 주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만든 최초의 민자역사다. 대합실부터 역 간판까지 전부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당시 산간 오지인 원곡마을로 오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영동선뿐이었다. 그마저도 역사가 없어서 열차가 서지 않았고, 마을을 지날 때 보따리를 창문으로 던져놓고, 분천역이나 승부역에 내려서 걸어 다녔다. 양원역을 세운 뒤 주민들의 간절한 소원대로 기차가 정차하게 되었다.
하늘도 세평, 꽃밭도 세평이라는 승부역은 깊은 산골 작은 역이다. 이용자가 별로 없는 역사는 결국 무인역으로 바뀌었다. 19년을 홀로 역사를 지키던 역무원은 사라졌지만, 그가 담벼락에 남긴 시는 비석이 되어 승부역을 지키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오지 풍경을 두 발로 누리는 낙동정맥트레일은 수해 피해를 복구하고 다시 개통되었다. 낙동정맥트레일은 석개재에서 승부역과 분천역을 지나 울진 광회리에 이르는 산길이다. 전체 3개의 구간 중에 승부역에서 분천역으로 가는 2구간이 가장 인기가 높다.
승부역에서 현수교를 건너면 장승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본격적인 숲길을 지나 배바위고개를 넘고, 비봉마을로 들어서면 분천역까지 낙동강을 곁에 두고 걷는다. 보통 걸음으로 대략 4시간이 소요된다. 낙동정맥트레일과는 달리 오롯이 낙동강을 따라 걷는 낙동강세평하늘길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폐쇄 중이다.
분천산타마을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봉화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넓은 공간 안에서는 다채로운 정원을 계절별로 즐길 수 있다. 정원을 구경하며 걷거나, 귀여운 호랑이 모양의 트램을 타거나 끝자락에 자리한 호랑이숲에 닿는다. 호랑이숲에는 6마리의 백두산 호랑이가 산다.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즐기거나, 커다란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하는 생생한 장면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산골 오일장인 억지춘양시장은 요즘 뜨는 봉화 여행지 중 하나다. 장이 서는 4일과 9일이면 적막한 산골 마을이 시끌벅적 활기를 띤다. 장날 외에도 여름철에 열리는 산골야시장을 비롯해 핼러윈축제, 주말 장터 등 풍성한 볼거리와 푸짐한 시골 인심이 넘치는 시장이다.
봉화는 우리나라에서 정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우리나라 650여 개의 정자 중에 봉화지역에만 103개가 존재한다. 봉화정자문화생활관은 누정전시관, 전통놀이마당, 누정오경 등 살아 숨 쉬는 누정문화를 느끼게 한다. 솔 향기 그윽한 솔향촌에서는 하룻밤 머물며 정자의 매력을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의뢰로 현장을 탐방한 유은영 여행작가는 당일 여행 코스로 분천산타마을→V-Train→국립백두대간수목원을, 1박 2일 여행 코스로 첫날 분천산타마을→ V-Train→낙동정맥트레일, 둘째 날 국립백두대간수목원→억지춘양시장→봉화정자문화생활관을 권했다. 숙박지로는 봉화정자문화생활관, 만회고택, 성암재 등을, 먹거리 식당으로는 오시오숯불식육식당(돼지숯불구이), 대가한정식(돌솥곤드레정식), 산타육칼(가마솥육칼국수) 등을 추천했다.
주변에는 청량사, 국립청옥산자연휴양림, 봉화목재문화체험장, 만회고택, 닭실마을, 청암정, 범바위전망대 등이 있다.
[한국관광공사 12월 추천 가볼만한 곳, 유은영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