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경찰의 부실 대처로 달아난 납치범이 인질을 보복 살해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국가의 배상책임을 확정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는 ‘대구 여대생 납치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상고를 기각했다고 19일 밝혔다. 이에 따라 96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재판부는 “인질납치범이 운전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차량을 검문하면서 용의자의 도주 위험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직무집행상 과실”이라고 판단했다.

2010년 대구 수성구에서 승용차를 몰면서 인질 대상을 물색하던 김모(31) 씨는 아파트 출입문 인근에 앉아있던 여대생 이모(26) 씨를 유인해 조수석에 태웠다. 이씨가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하려고 하자 김씨는 주먹으로 수차례 이씨의 얼굴과 배를 때렸다. 이후 이씨를 강간한 뒤 이씨 부모에게 현금 6000만원을 요구하며 인질극을 벌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실시하고, 이씨 계좌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지를 확인했다. 이후 이씨의 현금카드가 부정사용됐다는 연락을 받고 출동한 경찰은 김씨의 차량을 발견하고 세워 검문했다.

이 과정에서 형사임을 눈치챈 김씨가 도주했고 경찰은 혼잡한 교통상황 때문에 김씨를 놓쳤다. 당시 경찰과 김씨 차량의 거리는 30m도 되지 않았다. 경찰수사의 압박감을 느낀 김씨는 이씨를 살해해 유기했다.

이에 피해자 이씨의 가족은 “경찰이 예상 도주로를 차단하지 않는 등 안이한 대처로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씨가 사망했다”며 2011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김씨에게 전적인 불법행위 책임이 있고 경찰공무원에게는 피고의 범행을 저지하지 못한 소극적 잘못만 있다고 판단해 국가가 전체 피해액의 10%를 배상할 것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국가에게 30%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유족들에게 총 96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가는 재판과정에서 “당시 차량이 범인의 것으로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한 불심검문을 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으나 원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