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전 마지막 작품 ‘육룡이 나르샤’ 냉혈군주속 여린 ‘이방원’에 포커스 정치대업따라 죽임결정할땐 연민느껴 권력욕 향해 내달리는 인물 연기하며 독보적 존재향한 배우의 외로움 연상 “입대심경요? 따로 생각안해봤어요”
“제가 정치를 한다면요? 하하하. 왜 그러세요. 저 이 일 오래하고 싶어요.”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은 지는 한 3년쯤 됐다. 대선 직후 그는 “생계의 저변에 정치가 완벽하게 침투해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내 일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이전까지의 유아인은 정치성향을 숨기지 않았다. 논란도 곧잘 따라다녔다. ‘소신 발언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도, ‘훈장님’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강경한 어조는 비난받기 십상인 시대다. “오해가 만들어지는 세상이고, 오해를 줄이는 것도 나의 몫”이라는 그는 “거짓 없이 진실되게 할 말은 하자”는 쪽이다. “하지 못 할 말은 못하겠지만…”.
“이방원의 모습에 제일 가까운 것 같아요. 이방원이 가장 현실적인 것 같고요. 이방원이 요즘 시대에 정치를 한다면 잘 할 것 같아요. 욕 먹어가면서요.”
배우 유아인, 사람 유아인, 또 어떤 아이콘이기도 한 그를 만났다. ‘사극판 어벤저스’로 불린 ‘육룡이 나르샤’(SBS)가 마지막 방송을 마친 이후다. “2%의 섭섭함과 98%의 시원함이 있어요.”
2015년은 명실상부 ‘유아인의 해’였다. 진상 재벌3세(베테랑), 자유로운 사도세자(‘사도’)로 한창 물이 올랐다. 입대 전 마지막 작품으로 50부작 ‘육룡이 나르샤’를 선택하며, 긴 호흡으로 시청자와 만났다. 청년 이방원이었다. “제가 연기한 인물 중 가장 입체적이고, 가장 정이 가는 인물이에요.”
모두가 알고 있는 인물을 재정립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역사 속 인물이기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첨언’이 많다. 유아인에겐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방원과 다른 모습을 꺼내놓아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유아인의 이방원은 낭만적인 청춘이고, 연약한 권력자였다. “사람은 굉장히 입체적이잖아요. 다른 각도에서 이방원을 보려고 했어요. 냉혈군주라는 수사와 달리 연약함을 포착하려고 했어요. 이방원이 선택할 수밖에 없던 성질들의 이면엔 연약함을 감추고 드러나는 강인함이 있으리라 짐작했던 것 같아요.”
이방원으로 살아온 지난 6개월, 유아인은 “성장의 기쁨”을 만났다. “연기하는 내내 혼란스럽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역사가 설정해놓은 인물을 달리 해석하면 왜곡과 미화”라는 꼬리표가 따라오기 때문이었다. “20대의 이방원, 얼마나 어려요. 정치적으로 한 사람을 살해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이 악인이라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태어나 살아가고, 누군가를 죽이거나 살리는 것, 그것밖에 선택할 수 없는데 얼마나 혼란스러울까요.” 유아인은 이 장면을 촬영하며 눈물을 흘렸다. 대본에는 없던 설정이었다. 그런 이방원에게 ’연민‘을 느꼈다면, 유아인은 ‘대업’은 이룬 셈이다.
새로운 이방원을 꺼내놓으며 유아인은 “이방원의 대의는 어느 순간 신념보다는 자신의 권력욕을 향했다”과 바라봤다. 지금의 정치인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선거가 대의가 되어있는 것처럼, 힘을 움켜지게 되는 그 과정이 진짜 대의인 것처럼요.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치에 환멸을 느끼잖아요.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의 정치인들도 각자의 이유가 있듯, 이방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자신의 이유, 상처가 있지만 결국엔 힘을 움켜쥐고자 하는 권력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요.”
권력욕을 향해 질주하는 정치인의 모습에서 유아인은 배우의 성질을 발견했다. ”기어코 권력을 움켜쥐려 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고독함이 있어요. 최고 권력자는 한 사람이잖아요.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가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존재가 되려고 하는 일은 두렵고, 설레고, 외로운 일이죠. 전 어마어마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고, 그 욕망을 통해 얻은 성취를 사람들과 어떻게 나눌까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그게 그나마 제 욕망을 순수하게 가이드하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유아인이 기부와 자선활동에 숨기지 않고 나서는 이유다.
“어떻게 피해가야 할까 고민이 된다”며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질문에도 답이 술술 나온다. “아무리 쿨하려고 애써도 세상이 내 쿨함을 지켜주지 않는 것 같다”지만, 그 ‘쿨함’이 결국 유아인의 입을 떼게 만든다. 이제 막 서른이 된 스타배우에게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는 자리 역시 유아인이 유일하다.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은지는 오래됐는데,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이 지금의 시대정신이고요. 개인화 되어가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라고 생각해요. 기성세대가 만든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열린 시간으로 바라보고, 투표라는 것을 통해 반드시 참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해야하는지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지만,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투표를 꼭 해야해요.”
열여섯에 청소년드라마 ’반올림‘으로 데뷔해 14년째 연기를 했다. 치열했던 20대엔 “성장이 가장 큰 화두”였다. “배우의 일은 선입견을 만들고 깨부수는 과정”이라는 유아인은 그 흔한 ‘로맨틱코미디’ 한 편 없이 한류스타 반열에 올랐다.
“하루하루 두렵고 하루하루 설렜고 하루하루 외로웠던” 이방원을 보내며 유아인도 새로운 세계를 기다리는 중이다. 가장 반짝이는 때에 군입대를 앞두고 있다.
“지금 제가 화려한가요? 화려하지 않고 초라한 시기에 가는 것보단 나은 것 같아요. 서른에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워요.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고, 달려오니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뤄서 그 순간을 기다리는 상태예요. 이기적으로 선택했지만 제가 불법을 저지른 것은 아니니까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선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입대 심경 같은 건 별달리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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