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혹시 녹음한 곡 중에 안 쓰는 곡 있으세요? 저희 드라마에 넣어드릴게요. 이름도 알리고 좋잖아요.”

제작실비 0원, 수익이 날 지 안 날지도 모르는 희망 복권을 긁으라는 5대5 수익 분배 계약. 인디밴드들이 CJ E&M 계열 드라마 OST 계약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상생’을 최고 가치로 앞세우며 ‘문화를 창조한다‘는 기업에 붙은 ’갑질 논란‘이다.

발단은 인디밴드 ‘슈가볼’의 멤버 고창인이 SNS에 남긴 글이었다. 고창인은 “나에게 녹음 믹스 마스터 세션비는 알아서 하시고, 우리가 OST로 좀 쓰게 남는 곡 하나 없냐고 물었던 게 ‘치즈인더트랩’이었다. 아, 곡비도 없고”라는 글을 올렸다.

‘치즈인더트랩’을 연출한 이윤정 감독과의 몇 차례 호흡으로 이번에도 드라마 OST를 담당한 음악감독 티어라이너는 이 글을 리트윗하며 “분노할 만한 일이다. 직접 제작이 안 된다기에 상업적인 곡이 아닌 동료들 인디밴드 곡만 싣기로 하고, 곡을 수급할 때 계약조건도 좋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 이상은 월권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을 계기로 CJ E&M 드라마의 OST 제작 과정에서 ‘갑질’ 논란이 시작됐다. CJ E&M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CJ E&M 관계자는 “‘치즈인더트랩’ OST는 기존 OST와 달리 컨셉트 자체를 인디음악을 풍부하게 쓰는 것으로 제작진과 기획됐다. 계약 자체도 OST 제작팀과 인디 아티스트, 소속사 모두 음원 수익을 균등하게 나누는 계약으로, 함께 하자는 좋은 취지로 진행되어 왔다”며 “OST에 참여한 모든 아티스트, 소속사와의 계약은 원만히 진행됐고 음악 결과또한 좋아서 모두 만족한 분위기다”라고 밝혔다.

‘치즈인더트랩’ OST 논란으로 촉발됐으나, 인디밴드들의 불만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일에 대해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무명의 인디밴드에게 ‘잘 나가는’ CJ E&M표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노래 한 곡이 실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숫자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밴드가 공존하고, 하루에도 수십개의 음원이 쏟아져나오는 가요계에서 무명의 밴드가 노래를 알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가수들에게 ‘악마의 유혹’이 찾아왔다.

논란의 주인공이 됐던 슈가볼 고창인은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앞서 CJ E&M 계열 tvN 드라마 ‘아홉수 소년’ OST 참여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창인은 “당시 제작비의 지원 없이 곡 작업을 했다. 녹음, 믹스, 마스터, 연주비 등 다 해서 몇 백만원이 들어갔다”며 “하지만 5 대 5 계약 조건을 통해 음원 수익으로 제작비를 회수하는 데에 1년이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고창인이 최근 ‘치즈인더트랩’ 관련 글을 올린 것은 이 때문이었다. 드라마 시작에 앞서 같은 방식으로 ‘치즈인더트랩’ OST 제안을 받았으나, 이 같은 계약이 ‘부당한 조건’이라 판단해 거절했다는 것이다. CJ E&M에 대한 불만의 글을 올렸을 당시 가요기획사 YMC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던 고창인은 “내가 쓴 글로 시끄러워졌는지 CJ E&M의 모 본부장이 YMC 대표에게 전화를 했고, 그래서 글의 일부를 수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고창인이 올렸던 글의 원문은 “드라마 OST를 만들어달라고 하면서 녹음비, 세션비, 믹스/마스터비도 제 사비로 해결하라고 하는 건 앞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문화를 만들긴...”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한 인디밴드 멤버는 “ CJ E&M의 한 드라마 OST를 참여한 적이 있다. 인기 배우 OOO씨가 출연하고, 인기 드라마 OOOO 제작진이 만드는 드라마가 있는데 녹음한 곡 중에 앨범에 넣기엔 애매하거나 안 쓰는 곡이 있냐는 말로 OST 작업을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남는 곡’이 있냐는 말로 화두를 던지지만 새롭게 작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 “제작비는 지원하지 않는다. 다만 음원 수익 분배를 5 대 5로 하겠냐고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인디밴드들이 새로운 곡을 작업하기 위해선 최소 200만원의 비용이 든다. 하루 중 3시간 30분~4시간 동안 녹음실을 대여하는 비용이 30만원이 들어간다. ‘저렴한 녹음실’ 기준이라는 것이 한 인디밴드의 설명이다. 거기에 보컬 30만원, 악기 세션을 둘만 써도 60만원, 믹스에만 50만원, 마스터링에도 15~20만원이 들어간다. 풀밴드로 노래를 만들면 비용은 더 들어가지만, 최소 200만원은 있어야 곡 하나를 작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고창인은 “문제는 우리 같은 팀들은 곡 작업을 하는 데에 비용을 많이 들여 만들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내 이름을 걸고 나가는 작업에서 좋은 퀄리티로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프로 정신을 가지고 있는 밴드임에도 메이저에서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의 작업 과정까지 쉽게 판단하고 있었다.

이름 난 밴드의 경우엔 이 같은 계약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타카피 보컥 김재국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막돼먹은 영애씨 OST 작업 당시 인디밴드는 원래 무료로 계약한다 하더라고요. 당장 내 노래 드라마에서 빼서 쓰레기통에 버리라 했다. 바로 다음날 죄송하다며 계약서 수정해서 돈 받은 적 있다. 문화가 어쩌고 하기 전에 기본부터 갖추길 바란다”는 글을 남겼다.

실제로 한 유명 뮤지션은 CJ E&M의 인기 드라마 OST 작업에 참여하며 가창비 차원의 곡비를 받았다. 해당 가수의 소속사 관계자는 “OST 계약을 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실비를 받고 음원 수익 비율을 나누거나, 제작실비, 곡비를 받고 곡을 넘겨주는 방법, 손익분기점이 넘으면 수익을 나누는 방법 등이 있다”라며 “이 가운데 가장 피하는 것이 수익을 나누는 방법이다. OST 매출 자체가 늦게 집계되는 데다 수익을 나누는 것에서 제작비를 뽑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도박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작비 지원도 없는데 음원 수익을 5대5로 나누는 계약을 했다면, 아마도 인디밴드들이 정확한 내용을 잘 모른 채로 사인을 했기 때문은 아니겠냐”고 반문하며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며 도리어 당혹스러워했다.

계약 조건을 몰라서도, 이해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불공정한 조건에도 인디밴드가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은 이같은 기회를 통해서라도 노래를 알리고 싶은 절박함 때문이다. CJ E&M 온스타일 드라마 OST에 참여한 한 인디밴드는 “우리 역시 제작비를 받지 못 했고, 음원 수익은 5대5로 계약했다. 아직 정산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기회가 왔으니 이렇게라도 우리의 노래를 한 번이라도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한 인디밴드 멤버는 “어떤 사람은 무급 인턴 6개월을 한 뒤 정직원이 되면 행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계약 관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디밴드 멤버는 “OST 계약 논란은 드라마에 얼마 만큼의 예산이 편성되느냐 아니냐의 문제도 크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명목으로 인디 뮤지션에게 열정페이를 받아들이라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한 인디 레이블 관계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드라마 마케팅을 이유로 큰 부분을 챙기고 있는게 맞다는 생각이다. 전혀 만족하지 않았으며, 같은 계약 조건으로는 앞으로 참여할 마음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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