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게임’이다. 만 13세부터 28세까지, 101명의 소녀들이 11인조 걸그룹 멤버로 발탁되기 위해 ‘무한경쟁’의 시험대에 섰다. 국민투표로 걸그룹을 만든다는 케이블 채널 Mnet의 야심작 ‘프로듀스 101’이다.
이 프로그램은 그간 Mnet이 축적한 ‘노하우’가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 힙합 서바이벌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의 자극과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가 만든 감동의 기적, JYP 걸그룹 프로젝트 ‘식스틴’의 계급론이 참으로 조화롭게 버무려졌다. 시청률 1%대로 출발해 4회가 방영된 현재 3%까지 치솟았다.
자극이 센 만큼 관심도 높지만 프로그램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불편하기 그지 없다.
“힘들어도 꿈이니까”(뮤직K 김주나) 연습생 생활을 견디며 데뷔의 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눈물을 흘리기 일쑤지만,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A부터 F까지 매겨진 등급별 성적표다.
춤과 노래를 해본 적도 없는 배우 기획사 소속 연습생에겐 “열심히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부단한 노력 뒤에 노래 한 곡의 안무를 완벽히 익히니 “고생 많았다”며 호랑이 같은 트레이너와 함께 눈물을 쏟는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경쟁을 통해 울고 불고 하는 모습을 비추고, 등급이 떨어지고 올라가는 연습생들의 모습이 리얼하게 그려진다. 자극성이 일반 예능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며 “연예계에서 걸그룹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현실적으로 담았기 때문에 호기심을 가지고 볼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자극이 만든 중독성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여러모로 불편하다. 외모, 소속사, 실력을 등급으로 나눈다. 대놓고 “걸그룹은 예뻐야 한다”고 말하는 트레이너, 출중한 외모의 연습생을 보며 “난 어떻게 생겼어?”, “우리 못난이 삼형제 같아”라며 외모를 품평하는 장면들은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 걸그룹의 ‘성 상품화’와 다르지 않다.
대형기획사 소속의 연습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등장할 때 연습생들은 “소속사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렇지만, 확실히 달라보이는 건 있다”, “대형기획사도 아무나 들어가는 건 아니다”라며 서로의 계층을 구분한다.
제작진은 이 과정들을 놀랍도록 열심히 담아낸다. 외모와 소속사엔 등급이 있다고 강조하는 것처럼 말이다. 방송엔 유명 기획사와 예쁜 외모의 연습생이 얼굴을 자주 비춘다. 편집이 국민투표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게임에서 TV에 나오는 기회마저 불평등하게 주어지는 모습이다.
이미 한동철 Mnet 국장은 제작발표회 당시 대형기획사 연습생, 기존 걸그룹 멤버들이 참가한 것에 대해 “출발선이 다른 건 인정해야 한다. 출발선을 맞춰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고 했고, 장근석은 “외모도 실력의 하나다”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출발부터 ‘불공정한 게임’을 전국구 방송 채널이 비판 없이 인정한 채 프로그램을 시작한 셈이다. 프로그램에서 소속사의 이름값으로 ‘수저계급론’이 나오는 것은 제작진의 철저한 방향성에 맞춰진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다. 몇 차례의 미션을 통해 등급 상향 조정을 거치면 마침내 11명의 데뷔조가 완성된다. 경쟁, 또 경쟁을 거쳐야 한다.
연출을 맡은 안준영 PD는 “‘프로듀스101’은 101명의 연습생들 중 11명의 유닛 걸그룹 멤버를 뽑는 구성으로 일종의 순위 프로그램”이라며 “등급에 따른 특혜는 없다. 단지 트레이너에게 개인별 맞춤형 수업을 체계적으로 받기 위해 반을 나눴고 이는 속성으로 모든 연습생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과정이 시청자의 눈에 경쟁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해도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이상 거쳐야할 관문이라는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의 시스템은 일부 대형기획사의 연습생 육성 과정과 판박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 대형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던 가수 지망생은 “이 프로그램과 똑같은 방식으로 트레이닝을 받았다. 등급에 따라 반이 갈리고 그 안에서 경쟁을 한다. 그 생활을 거치면 어느샌가 실력은 향상돼있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본지에 말했다. “꿈을 가지고 시작했음에도 내가 처한 이 환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경쟁 속으로만 떠밀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는 고백이다.
‘자본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상품’의 하나이기에, 경쟁 역시 강요받아야 하는 연습생의 일과 등은 기획사 고유의 시스템일지라도, TV가 보여주는 것은 달라야한다.
하재근 평론가는 “정글 같은 현실이나 반영한다는 미명 하에 자극적인 경쟁구도의 단면을 내보내려는 상업적 의도가 적지 않다”며 “등급과 점수를 매겨 탈락시키는 것, 사람의 가치를 경쟁의 결과로만 평가하는 것은 시청자의 세계관에 승자독식을 누리는 것이 정당하고 저성과자는 무가치한 존재로 각인하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무사히 단계를 밟아 11명 안에 들어가면 연습생들은 꿈에 그리던 데뷔의 기회를 잡게 된다. 4월 3일이 이들의 공식 데뷔일이다. 11명의 매니지먼트는 에일리 소속사 YMC엔터테인먼트에서 담당한다.
일부 가요기획사 관계자들은 “어렵게 데뷔를 한다고 해도 걸그룹은 보이그룹과 달리 팬덤이 약해 성공 가능성이 낮다”라며 “국민 프로듀서라는 개념을 통해 시청자 투표로 멤버들을 뽑으면, 그 사람들이 팬덤으로 유입돼 티켓파워를 움직일 가능성이 열려있다. 방송을 통해 국민이 직접 만든 그룹이라는 점 때문”이라는 청사진을 그리기도 한다.
당연히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어차피 약 10개월간 활동한 뒤 해체될 걸그룹을 만들기 위해 ‘자본의 논리’를 방송에서 활용해야하겠냐는 시각이다. CJ표 걸그룹으로의 활동 종료 이후 다시 연습생 신분으로 돌아가야할 이들의 괴리감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으로 남는다.
하재근 평론가는 “이미 몇 편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우승자를 뽑았다. 당시에는 폭발적인 관심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이후엔 시들해졌다”라며 “이 프로그램이 그 관심을 이어갈지 끊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지망생들을 데리고 시한부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연습생의 입장에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만 가중시키는 모습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주목받고 있는 연습생이 소속된 기획사 대표는 “멤버로 뽑혀 활동한 이후 다시 소속사로 돌아오게 된다. 그 사이에 기획을 하거나, 새로운 결합을 해서 데뷔조로 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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