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일본 한류 일으킨 OOO, 중화권 스타로 발돋움”
최근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거대한 중국 시장을 향해 너도나도 발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제 중국시장을 겨냥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 생산과 수출은 한국 엔터산업의 ‘성공 공식’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한국 배우나 가수가 중국과 대만, 홍콩, 싱가폴 등지에서 인기를 얻는 일도 더이상 드문 일이 아닙니다. 기획사 등에서는 이같은 지역에서 소속 연예인의 활약에 대해 “중화권(中華圈)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말을 사용하며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곤 합니다.
예컨대 “가수 OOO 中 베이징 공연 성황…중화권 본격 순회”라거나 “OOO, 국내를 넘어 아시아 스타로…중화권 투어 팬미팅 성료”라는 식의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죠.
그러나 ‘중화(中華)’라는 말의 본래 어원을 살펴보고 나면 이 말을 선뜻 쓰기 어려워질지도 모릅니다. ‘가운데 중(中)’ 자를 쓰는 중국이 지리적ㆍ문화적으로 ‘세계의 중심이다’라는 뜻에다가, ‘빛날 화(華)’ 자가 더해져 있죠. 그러니까 ‘중화’라는 말은 중국의 입장에서 그들이 가장 뛰어나다는 인식이 심어져 있는 언어인 것입니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실로 지대했던 중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패권’을 지닌 중국의 자문화 중심주의적인 인식은 중국이 영토 내에서 한족(漢族)이 아닌 소수민족이나 주변국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중국’만을 고집했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는 ‘화이(華夷)사상’으로도 나타납니다. 중화 이외에는 이적(夷狄ㆍ오랑캐)라고 천시하고 배척하는, 선민의식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현재 한국 대중문화계나 사회 일반에서 ‘중화권’이라는 말은 ‘중국 문화권’을 가리키는 말로 통상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라는 말처럼 뜻이 담긴 언어를 알고 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같을 순 없다는 것이죠.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화’라는 말은 중국을 스스로 세계의 중심으로 본 것”이라며 “하지만 한국에서 현재 ‘중화’라는 말은 관행적으로 쓰여 엄격하게 자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용어를 객관화시키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더군다나 최근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는 중국 자본이 대거 유입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는 중국 자본이 한국의 콘텐츠 생산력을 높이 사고 있지만, 머지않은 시일에 중국 자본에 의해 한국 문화산업이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가 중국 여론의 뭇매를 맞은 ‘쯔위 사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즉각 중국인에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중국 자본이 현재 한국 엔터 업계에 얼마나 커다란 존재감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초유의 사태였습니다.
경쟁력을 갖춘 한류 콘텐츠로 전 세계에서 ‘동등하게’ 겨뤄야 할 한국 엔터 업계가 스스로 ‘중화’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한편에는 관용적으로 쓰이는 이 말이 ‘중국 문화권’을 뜻하는 가치중립적인 단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는 “중국문명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그런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인기를 끈다는 말로 보면 된다”라며 “중화권이라는 말 안에도 단일하지 않은 다양한 문화를 포괄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