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과거 동물원이 불렀던 ‘혜화동’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에서 화자는 내일이면 멀리 떠난다는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고. 골목길. 지금은 낯선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세워진 공간에서 골목길을 찾기는 쉽지 않으니까. 물론 건물과 건물 사이에 놓여진 길이 없는 건 아닐 게다. 하지만 그 길을 골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골목이란 ‘큰길에서 쑥 들어가 동네나 마을 사이로 이리저리 나 있는 좁은 길’을 이르는 말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단연 이 ‘골목길’이다. 그 골목길에서는 꽤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골목 한 켠에 놓여진 평상에서는 골목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수다를 떤다. 때로는 맥주를 마시고 때로는 콩나물을 다듬으며 때로는 만두를 빚는다. 그리고 그렇게 다듬은 콩나물과 만두는 각각의 저녁밥상 식탁에 오른다. 서로 다른 이웃들이지만 서로 음식을 나누어 닮아버린 저녁 밥상처럼 그들은 말 그대로의 ‘식구(食口)’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 집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도 마치 형제나 남매, 자매 같은 모습이다. 그들은 함께 모여 TV를 보고 저녁을 먹고 때때로 누군가의 생일을 가족처럼 챙긴다.
이들이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이유는 그 골목길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웃들 간에 일종의 가족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80년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방과 후 집에 가방을 던져놓고 당연하다는 듯 골목에 모여 온종일 다방구 같은 게임을 했던 걸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해지면 집집마다 풍겨 나오던 밥 냄새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밥 먹어라!”하고 외치는 엄마들의 목소리를 듣곤 했었다. 골목은 그래서 당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어린 시절로 단박에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응답하라1988>은 복고다. 그런데 복고가 다루는 건 과거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재의 결핍을 다룬다. 현재 없는 어떤 것을 과거를 통해서나마 기억 속에서 재건하려는 욕망이 바로 복고다. <응답하라1988>이 기억을 통해 재건하려는 건 바로 그 골목길이다. 그 골목길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던 사람냄새 가득했던 진정한 삶에 대한 그리움이다.
80년대부터 거세게 불어 닥친 부동산 열기는 아파트 건축과 함께 불이 붙었다. 아파트는 그냥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공간이 있어야 하고 그 공간이 말끔하게 밀어 없어져야 그 위에 아파트가 세워진다. 아파트가 세워지기 위해 밀어내는 건 공간만이 아니다. 그 공간에 그려졌던 수많은 삶의 흔적들과 온기들도 똑같이 밀어내진다.
눈 내리던 날이면 함께 모여 눈사람을 만들던 기억도, 친구들끼리 경쟁하듯 딱지치기에 열중하던 기억들도, 이웃끼리 음식을 나눠먹던 훈훈한 정경들도, 하다못해 골목 담벼락에 붙여지곤 했던 영화 포스터의 정겨움까지 속절없이 사라져버린다.
<응답하라1988>의 OST로 깔리는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라는 가사는 그래서 새삼 우리네 마음 한 구석을 저릿하게 만든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그래서 화려한 건물들을 세워 놓았지만 그만큼 많은 것들을 잊고 살게 된 우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리워진다. 그 때 어둑해진 골목길을 가득 메우던 밥 냄새가. 사람 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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