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박한이는 타석에서 보이는 루틴(습관)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말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경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만든 ‘스피드업’ 규정은 박한이를 표적으로 했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 아는 박한이의 루틴은 타석에서 공을 잘 치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다.
우선 발로 흙을 고른다. 손 장갑의 ‘찍찍이’를 떼었다 붙인다. 제자리에서 두 번 콩콩 뛰면서 양 발을 턴다. 고개를 푹 숙이고 헬멧을 벗어 이마를 두 번 쓸어 올린 뒤 다시 착용한다. 타격 박스에 두 발을 넓게 벌리고 왼쪽 허벅지를 탁 친다. 배트로 바닥에 선을 긋는다. 헛스윙을 두 번 한다. 약 24초가 소요되는 박한이의 루틴은 투수가 공을 하나 던질 때마다 반복된다. 상태 투수나 팬들 입장에서 보면 짜증 나는 행위다.
올 시즌 박한이는 타격 루틴을 바꿨다. 많이 고친 건 아니지만 시간을 줄였다. 박한이 입장에서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을 거다. 그럼에도 박한이는 올 시즌 110개 안타로, 2001년 데뷔 이후 15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쳐냈다. 부상으로 94경기 출전에 그쳤으면서도 엄청난 기록을 달성했다.
루틴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십년 동안 만들어진 습관이기 때문이다. 새 옷이 어색하고 불편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루틴을 고집하는 건 새로운 길을 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지금 가는 길이 편하니, 굳이 비좁고 험한 길을 갈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루틴이라는 행동엔 익숙함은 있어도 신선함이 없는 게 문제다. 편안해서 좋은데, 새로움에 대한 설렘과 충격이 없어 밋밋하다. 변화가 없으니 개선점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혁신도 없다.
지난 13일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안에서 도저히 안 된다면 밖에서라도 강한 충격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길을 가겠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안철수의 탈당’은 ‘야당의 총선 패배’와 동의어다. 야권 지지층을 배신한 행위이자 명분 없는 적전분열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신선하다. ‘가장 어려운 길을 가겠다’는 안철수의 선언이다. 루틴한 정치로는 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이해한다.
루틴을 벗어 던진다는 건 ‘나 또는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선을 넘어선다’는 뜻이다.
케이블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고딩’인 선우는 대학생 보라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해 사귀는 걸 허락 받았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라는 신분차이와 나이 차이를 넘어 사랑을 쟁취했다. 선우와 보라의 풋풋한 사랑이 시작된 날 이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내레이션이 이렇게 흘렀다.
선(線이)라는 건 ‘딱 거기까지’란 뜻이다. 선을 지킨다는 건 지금껏 머물렀던 익숙함의 영역, 딱 거기까지의 세상과 규칙과 관계들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선을 넘지 않는다면 결코 다른 세상과 규칙과 관계는 만날 수 없다는 뜻이다. 새로운 관계를 꿈꾼다면, 사랑을 꿈꾼다면 선을 넘어야 한다. 선을 지키는 한 당신은 딱 거기까지일 수밖에 없다. 물론 세상엔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도 있다.
chunsim@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