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관광지를 방문하거나 오래된 예술작품을 마주하면 그 시대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주요 이슈는 어떤 것들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이런 습관이 생긴 것은 미국 뉴욕에 갔을 때부터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63빌딩이었던 터라 맨해튼의 마천루를 올려다보기만 해도 탄성이 절로 나오던 와중에, 100층이 넘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완공연도가 1931년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는 깜짝 놀라 연도를 제대로 들은 것인지 몇 번을 되물었었다.

뉴욕에서의 경험뿐만이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지하철 열차에 삐걱대는 나무 의자가 있는 것을 보고 웃다가 그 지하철이 1913년 개통됐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은 적도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하니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 시대의 흐름에 뒤처져 있던 조상님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사실 조상 잘 만난 것으로 따지면 스페인만 한 곳도 없다. 경제위기를 겪는 와중에도 천성적으로 타고난 듯한 스페인 사람들의 여유는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처럼 역사적, 문화적으로 풍요로웠던 과거의 영화가 준 산물 같았다. 스페인의 선조들은 일찌감치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 인구 5억의 스페인어권 시장을 남겨주었다.

그런데 한국을 부러워하는 스페인 사람도 있다. 주인공은 마드리드 무역관에서 근무 중인 헤로니모다. 스페인 사람들을 만나 한국을 얘기할 때면 한국인인 나보다도 훨씬 열성적이다. 한국은 정말 경이로운 나라라고, 세계가, 산업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려면 한국에 반드시 가봐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는데 방한 바이어를 유치하려고 의례적으로 하는 빈말 같지는 않다.

도대체 한국의 어떤 점이 그리 좋아 보이냐고 물었더니, 재미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산업 변화의 산 증인을 자처한 헤로니모는 혁신과 발전을 거듭하는 한국의 모습이 너무도 부럽다고 했다. 경제위기의 긴 터널을 이제 막 벗어나고는 있지만 오랜 기간 산업구조와 주력 수출품목에 있어 이렇다 할 변혁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스페인의 입장에서 한국의 역동성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한국인인 것이 뿌듯해지는 대답이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인 수출이 부진한 상황이지만,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을 이룩해 낸 저력이 있는 국가다. 냉정한 비판과 성찰은 필요하겠지만, 조금 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요즘 국내에서 수저 계급론이 논란이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조와 자기비하가 사회에 팽배해 있는 것 같아 썩 유쾌하지 않다. 자신이 ‘흙 수저’라고 자조하며 가족과 사회를 상처 주지 않았으면 한다. 흙은 입에 넣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흙은 뿌리를 내리게 하고 양분을 공급하며 자라게 해준다. 지금은 바람이 불고 있을지언정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좋은 토양 위에 서 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신뢰와 자부심을 품고 최선을 다해 단단히 뿌리내리고 성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