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 탄원서 -피해자 탄원서 효력 커 -잘못내면 오히려 양형 불리 ‘독’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 1877통. STX 강덕수 전 회장이 받은 탄원서 개수다. 이중에는 STX 노조 간부, STX 사태로 경영위기를 맞았던 중소협력업체들의 탄원서도 섞여 있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강 전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STX 전 임직원, 노조간부 등이 강 전 회장의 탄원서를 제출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한다”고 밝혔다.

탄원서는 법적인 증거능력은 없지만 형을 결정하는 판사의 마음을 흔들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이 위치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일대에는 “잘 쓴 탄원서 하나가 열 변호사 안 부럽다”는 말도 돌아다닌다.

그렇다면 어떤 탄원서가 판결에 영향을 크게 줄까. 현직 판사들은 피해자의 탄원서가 가장 크다고 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경제사범의 경우 피해자가 금전적 손해를 다 만회한 뒤 처벌을 더이상 원하지 않는다고 탄원서를 내면 굳이 엄벌에 처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집행유예를 선고하려는 순간 성범죄 피해자가 쓴 엄벌에 처해달라는 탄원서를 받고 실형으로 바꾼 경우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피해자 가족ㆍ친지들이 선처를 바란다며 형식적으로 쓴 탄원서는 별 효과가 없다.

제자들을 상습 성추행한 서울대 강모 교수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지난 5월 강교수의 동료 교수, 조교 등이 낸 탄원서를 받아들곤 “진지한 반성인지 의문을 가진다”며 “이 탄원서들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꼬집었다.

현직 판사들은 “상대방을 탓만 하거나 A4 용지 가득 ‘죄송합니다’라고만 써내는 경우, 성경 구절 등으로 가득 채운 탄원서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잘못 쓴 탄원서는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재판부의 배려로 불구속 상태로 항소심 재판중인 A씨는 선고기일에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고 아내가 대리출석했다. 재판부는 아내가 써낸 탄원서를 꺼내 읽었다.

“남편 A씨는 지금껏 비겁하게 도망치는 남자답지 못한 적이 없었다고 아내분이 했는데 선고기일에 재판불출석은 비겁한 행동으로 보인다”며 일침을 가한뒤 재판선고를 일주일 연기하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처럼 탄원서가 법정에 무분별하게 제출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탄원서의 형식을 빙자해 일방적인 주장을 펼쳐 판사의 무의식에 영향을 주지 않겠냐는 것이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증거 하나를 낼 때도 변호인과 검사가 동의 절차를 걸치는데 탄원서는 그렇지 않다”며 “가급적 탄원서의 내용을 보지는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에 대해서는 검사가, 엄벌에 처해달라는 탄원서가 들어올 경우 변호사가 함께 내용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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