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중퇴ㆍ18세 임신ㆍ22세 해고, 빈민가 출신 여성 ‘미셸 몬’ -‘불편한 브래지어 여성’ 본 후 착용감 좋은 란제리 개발 -란제리 사업가로 성공 후 3년간의 지독한 다이어트로 50㎏ 감량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민상식ㆍ윤현종 기자] 지난해 영국 항공사 브리티시에어웨이즈(British Airways)의 모델로 등장한 한 여성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볼륨감 넘치는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40대 여성이었다.
그는 영국의 란제리 브랜드 ‘울티모’(Ultimo)의 창립자 미셸 몬(Michelle Moneㆍ43)이다.
미셸이 주목받은 건 단지 성공한 사업가여서가 아니었다. 아이 셋을 낳은 그는 2007년부터 3년에 걸쳐 몸무게 50㎏을 감량한 뒤 모델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미셸 몬의 인생은 그의 혹독한 ‘살 빼기’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가정 형편 때문에 15세에 학교를 자퇴했다. 미셸의 부친이 척추질환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이후 란제리 모델로 활동하던 미셸은 남편 미카엘 몬을 만나 18세에 아이 엄마가 됐다.
이듬해 미카엘과 결혼한 후 모델 일을 그만두고 맥주업체 라밧(Labatt)에서 마케팅 업무를 시작했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2년만에 마케팅부서 팀장의 자리에 올랐지만 22세때 구조조정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났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민하던 미셸은 1993년 저녁파티에서 불편한 브래지어를 한 여성들을 보고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다.
이어 운명처럼 새로운 재질의 실리콘 제품을 만나게 됐다.
그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에 가슴과 거의 같은 재질의 실리콘 상품을 우연히 알게 됐고, 해당 업체의 라이센스를 얻어 이 실리콘을 착용감이 편하고 보기에도 좋은 브래지어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3년의 연구 끝에 실리콘을 사용한 브래지어를 개발한 후 1996년 MJM인터내셔널을 설립하고 속옷브랜드 울티모를 선보였다. 자본금은 500파운드(한화 약 90만원)에 불과했다.
울티모는 착용감이 좋은 브래지어로 입소문을 타면서 단 시간 내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할리우드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지고, 영국 축구선수 피터 크라우치의 아내이자 모델인 애비 클랜시 등 유명 모델을 기용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회사의 급성장과 함께 미셸의 자산도 6000만달러(약 700억원)로 뛰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거둔 미셸이었지만 한 가지 큰 고민이 있었다. 아이 셋을 낳고 사업에 열중하느라 자신의 몸매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느새 몸무게는 100㎏이 넘었다.
2007년 그는 혹독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살 빼기에 나선 결정적인 이유는 ‘열등감’이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난 란제리 사업가이기 때문에 속옷을 입은 모델을 자주 만나야 했다.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모델 옆에 선 내 모습은 그저 뚱뚱한 아줌마였다”고 말한 바 있다.
미셸은 3년간의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마침내 112파운드(약 51㎏)를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살을 뺀 이후에는 유명 모델과 함께 자사 제품의 속옷 모델로도 나서 여성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혹독한 다이어트는 남편과의 갈등을 겪는 계기가 됐다. 때마침 남편 미카엘의 불륜설까지 제기되면서 결국 2011년 남편과 이혼했다.
이혼 직후에는 밤마다 와인 두 병을 마시는 등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미셸은 다시 운동을 시작하며 마음을 추스렸다. 미셸은 요즘에도 매일 5~8㎞를 달린다.
2014년 자신이 세운 MJM인터내셔널 지분의 80%를 팔아 넘긴 후 이사회 임원으로 남았던 그는 최근 인생 2막을 열었다.
셀프 태닝 제품을 제조하는 업체 유탄앤뷰티(UTan & Beauty)을 설립해 새로운 사업에 나섰고, 틈틈이 시간을 내 아이 셋과 여행을 다니며 추억을 쌓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 2기 정부의 신생기업 지원을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자로 임명되기도 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성공적인 삶을 산 미셸이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미셸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내 삶은 어떤 면에서 불운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여전히 꿈을 갖고 산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