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아낸 이야기. '사도'는 개봉 이후 4일 만에 100만 돌파에 성공하더니 추석 시즌 탄력 받아 13일 째 400만 관객을 동원, 현재 500만 돌파를 바라보고 있다.
'사도'의 흥행은 어느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사극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이준익 감독, 대한민국 대표 배우 송강호, 대세 유아인까지 이들이 모였으니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베일 벗은 '사도'는 역시나 기대를 충족시키는 배우들의 연기 열전, 촘촘함을 놓치지 않은 연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심리까지 보는 관객들마다 호평을 내놓고 있다. 또한 퓨전사극이나, 픽션이 가미된 이야기가 아닌 역사 속의 비극을 있는 그대로의 '날 것'으로 가져왔다. '사도'가 가지는 의미가 깊어지는 이유다.
"임오화변이 많은 드라마에서 다뤄져왔고,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신선도 측면에서 떨어질 수 있지만 정직하고 정치 역학적인 그런걸 배제하고 왕으로서 아비와 세자의 이야기에 집중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점이 이준익 감독의 '사도'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지요."
그 중 극의 무게를 단단히 잡고 있는 송강호. 그의 연기는 오천만 국민이 다 알지 않은가. 다만 지금까지 많은 미디어에서 다뤄졌던 영조의 모습을 송강호가 어떻게 그려낼지가 가장 궁금했었다. 역시 송강호의 영조는 달랐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지금까지 우리 머릿 속에 있던 '왕'이란 고정관념을 살짝 비틀었다. 하지만 송강호가 일부러 그 점을 노렸다기보다는, 조금 더 사료들을 깊에 들여다보고 가져온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영조가 '1년 중에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몇 번 드니'라고 물으니 사도가 '일년에 한 두 번 든다'고 대답하고, 이에 영조는 "솔직해서 좋다"라고 말한다. 이는 실제 사료에 기록된 영조의 말이라고.
"수십년 동안 드라마를 통해 사극의 고정관념이 생기셨을 것 입니다. 왕의 말투나 권위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게 쇠놰 된 것이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작품을 하기 전에 사료들을 검토하고 읽어봤는데 제가 연기했던 것처럼 실제로도 그런 말투를 영조대왕께서 쓰셨더라고요. 매번 왕이 근엄하고 신하를 대하듯한 말투는 아니었단거지요. 사석에서는 편하게 말씀하셨어요. 일부러 그렇게 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영화는 정공법으로 실제를 바탕으로 접근을 했습니다."
송강호 역시 '사도' 출연을 결정짓고, 캐릭터를 연구하기 전까지 임오화변에 대한 시선은 보통의 그것과 다를 것 없었다. 하지만 영조를 들여다볼 수록 '평생을 외로운 군주'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단다.
"임호화변은 중학교 역사 책에서 교육을 받았어요. 저도 이 영화를 하기 전까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삶을 표피적인 것만 알고 해석했고요. 영조대왕께서 평생 출생에 대한 콤플렉스, 형님 경종의 독살설에 시달려 왔어요. 우리 영화에서 정치 역할을 심도있게 다루진 않았지만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란 어마어마한 정치적인 배경 속에서 홀로 긴셍월동안 고통받은 분이란 것을 알았어요. 아들인 사도에 대한 집착 그런 것들이 본인은 고통스러운 왕위를 이어왔지만 아들인 너만은 제대로 된 왕으로 추앙 받길 바라는 아비의 마음에서 비극의 씨앗이 된 것이 아닐까요."
송강호는 70대 분장은 물론,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 걸음걸이까지 신경 썼다. 그저 나이 먹은 노(老) 왕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점에서 영조대왕께서 임오화변 시기에 우리나이로 70이었는데, 어떠한 과정도 없이 최대한 분장같은 것들에 모든 총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쁘고 멋있게 보이는게 아니라, 가장 영조다운 모습에 초점을 맞췄지요."
"걸음걸이, 목소리 등에서 나이든 영감님이 아니라 외로운 고통 속에서 살아온 군주, 인생의 삭막함 같은 느낌을 담고 싶었어요. 목소리만 들어도 저 나이까지 사는 동안 인생의 풍파를 느낄 수 있었겠다는 바람을 담았죠. 그래서 목을 좀 혹사 시켰어요. 그래서 그런 목소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조와 자신의 공통점이 있냐 물으니 송강호는 '외로움'이 많이 닮아있다고 대답했다.
"외로운건 닮은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도 굉장히 외롭거든요. 카메라 앞에선 더 외로워지죠. 누구도 도와주지 않잖아요. 왕도 마찬가지로 다들 지켜만 보고 이야기만 듣지 같이 고민하진 않아요. 자식과의 관계에서는 소통 부재는 비슷한 것 같네요. 하하. 제가 경상도 남자라 집에 가면 말이 없거든요."
마지막 엔딩신을 본 이들이라면 영조가 죽은 사도의 눈을 감겨주는 모습에서 눈물을 흘렸으리라. 그 때를 회상하는 송강호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아버지의 마음은 다 똑같지 않을까라고 미혼인 필자는 감히 짐작해봤다.
"결국은 모질게 대했던 영조지만 마지막 시체가 돼 있는 자식의 얼굴을 보는 표정이 아버지의 모습과 가장 닮아있지 않을까요. 실제는 영조대왕께서 사도세자를 만지진 않았고요.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라고 유추하는 것이죠. 시호를 내리신 것을 보고 유추해보면 마음은 더 했겠죠."
'베테랑'으로 천만배우에 등극하고 요새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유아인. '사도'에서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가 묵묵히 걸어온 길은 역시나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단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송강호 역시 유아인의 연기를 대견해하고 칭찬했다.
"테크닉 안 부리고, 광기가 찬 연기가 참 좋더라고요. 광기어린 연기를 하다보면 테크닉적인 유혹을 받을 수 밖에 없거든요. 진솔하게 자신의 감정을 내던지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숱한 드라마, 광인의 모습을 많이 봐왔을텐데 오롯이 마음에 올인 하면서 사도를 수행하는 것이 멋졌어요."
송강호가 영화로 데뷔 한 지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89년부터 연극으로 연기를 했으니 정확히는 28년 해다. 송강호와 인터뷰 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자신이 연기를 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해 하지마지 않는 마음이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다시 한 번 그는 속내를 전했다.
"89년에 데뷔해 배우로서 살아오면서 연극과 영화 밖에 안했지만 꾸준히 작품을 해올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성원 보내주셔서 부족하지만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저에겐 축복이죠.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