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가양6단지’. 지난달 이곳 전용면적 49㎡짜리가 2억4000만원에 팔렸다. 1층 매물이었다. 평균 거래가격이 2억90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5000만원이나 저렴했다.

이 단지에선 같은 면적의 전세 거래도 5건 이뤄졌다. 최고 거래액은 2억4000만원(9ㆍ14층)이었다.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에 필적하는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이달 초에는 2억5000만원에 전셋집이 거래되기도 했다. 전셋값이 집값이 뛰어 넘은 셈이다.

아파트 전세가율이 치솟으면서 ‘전세, 매매 역전시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수도권 일부 지역에선전셋집을 찾는 20~40대 수요자들이 몰리면서 전셋값은 치솟고 있다. 사진은 한눈에 알 수 있는 서울 강남 일부 지역의 부동산 매물 현황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아파트 전세가율이 치솟으면서 ‘전세, 매매 역전시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수도권 일부 지역에선전셋집을 찾는 20~40대 수요자들이 몰리면서 전셋값은 치솟고 있다. 사진은 한눈에 알 수 있는 서울 강남 일부 지역의 부동산 매물 현황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이 아파트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보통 로열층과 1층의 시세 차이는 4000만원 이상 나기 때문에 저층 매매사례와 전세가격을 비교하면 전세가율이 100%에 달할 수도 있다. 이미 49㎡과 58㎡의 가격 차이는 사실상 사라진 상태”라면서 “지금 추세대로라면 전세가는 더 올라갈텐데 중개사들도 수요자들도 점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했다.

주택시장에서 이처럼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여기서 배는 ‘매매가격’, 배꼽은 ‘전세가’를 뜻한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은 70.9%로 7월에 70% 고지를 넘어선 뒤 상승세를 이어갔다. 인천(70.6%)은 처음 70%대에 진입했고 경기도는 73.1%를 기록했다.

아파트 전세가율이 치솟으면서 ‘전세, 매매 역전시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수도권 일부 지역에선전셋집을 찾는 20~40대 수요자들이 몰리면서 전셋값은 치솟고 있다. 사진은 한눈에 알 수 있는 서울 강남 일부 지역의 부동산 매물 현황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아파트 전세가율이 치솟으면서 ‘전세, 매매 역전시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수도권 일부 지역에선전셋집을 찾는 20~40대 수요자들이 몰리면서 전셋값은 치솟고 있다. 사진은 한눈에 알 수 있는 서울 강남 일부 지역의 부동산 매물 현황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나는 전셋값, 기는 매매가=서울에서 전세가율이 높은 곳은 성북구(80.1%), 강서구(77.8%), 동작구(77.4%), 서대문구(75.2%) 등이다. 광화문, 강남, 여의도 같은 도심 이동이 편리하면서 소형 아파트가 밀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하철 4호선과 6호선이 지나는 성북구 종암ㆍ돈암ㆍ하월곡동에서 전세 물건 찾기는 힘겹다. 돈암동 H공인 대표는 “전세 만기를 2~3달 앞둔 집주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재계약할지 매물로 내놓을지 물어보는 작업을 며칠째 하고 있는데 매물 리스트에 기껏 1~2건 정도 올렸다”고 귀띔했다.

전셋집이 귀하다보니 이리재고 저리재다간 자칫 계약 기회를 놓치기도 일쑤다. 다음달 초 결혼식을 올리는 한 신혼부부는 11월이 돼서야 이사가 가능한 종암동 한 아파트에 전세계약을 맺었다. 신혼 한달은 일단 오피스텔에서 임시로 지내기로 했다.

경기도에선 수원의 전세가 상승이 가팔랐다. 특히 광교신도시가 포함된 영통구는 전세가 상승을 앞에서 이끌었다.

매탄동 신성공인 대표는 “삼성전자, 협력업체, 중소공장 직원들이 두터운 전세 수요층을 형성하고 있고 이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젊다”며 “이들은 기존 아파트 매입에는 관심이 없고 전세자금 대출을 적극 활용해 전세가격 상승에만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탄삼성3차’ 전용 82㎡의 전세가격은 1억5000만원 내외, 매매가는 1억8000만원 선이다. 인근 ‘성일아파트’ 전용 72㎡의 전셋값은 1억5000만~1억6000만원, 매매가는 1억8000만원으로 전세가율이 90%에 가깝다.

인천의 아파트 전셋값도 부쩍 올랐다. 2012년 9월부터 지난달 사이 남동구(20.5%포인트↑)와 동구(20.2%포인트↑)의 전세가율 상승폭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이곳의 전셋값이 크게 오른 건 투자수요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는 전언이다.

인천 구월동의 J공인 대표는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매매량의 60% 정도를 지방 투자자들이 담당했다”며 “이들이 실투자금을 가볍게 하기위해 전세가격을 자꾸 올리다보니 전세금과 매매가 갭이 급격히 좁혀졌다”고 했다.

▶‘깡통전세’ 경고…자발적 월세 등장=전세가격과 매매가격의 어깨높이가 점점 비슷해지면서 세입자들의 불안감도 커진다. 자칫 보증금을 떼일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세가율 70% 내외가 적당한 수준이라고 본다.

상황이 이렇자 ‘자발적 월세 전환’ 현상도 나타난다. 전세 재계약을 앞둔 세입자들이 집주인에게 먼저 월세 전환을 제안하는 것. 수천만원이나 오른 전세 보증금을 통째로 맡기는 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성북구 돈암동에 2억원(전용 59㎡)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부 남모(44) 씨는 지난달 중순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보증금은 유지하되 월세 25만원을 내겠다고 집주인을 설득했고 결국 받아들여졌다. 이 아파트의 전세금은 2년 사이 4000만~5000만원 가량 오른 상황.

돈암동 A공인 대표는 “전세가율이 치솟고 매스컴에서 ‘깡통전세’를 언급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일부 세입자들은 매달 20만~40만원 정도 부담하는 것을 피하고 보증금을 현재 수준으로 묶어두고 싶어한다”며 “대부분은 근저당 잡힌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일부에선 소위 ‘갭 투자’도 이뤄진다. ‘무피투자’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이 투자방식은 기본적으로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것이다. 매매가와 전세가 격차가 적을수록 순수 투자금액은 줄어드는 구조다. 이런 식의 투자수요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셋값이 더 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수원의 한 공인중개사는 “매수자들이 손에는 기껏 1000만~2000만원만 쥐고 있더라도 전세가격이 워낙 높기 때문에 매입 후 전세로 임대를 주면 비교적 소액의 돈으로도 집을 살 수 있다”며 “일부에선 실투자금을 줄이기 위해 집주인과 중개업자와 전세금을 띄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전세가율 상승 이어질 것”=현장에 있는 공인중개사들은 전세가 오름세는 이어질 거라고 입을 모으지만, 크게 걱정하진 않는 눈치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김명섭 수원 영통 지회장은 “산업단지, 삼성전자 등이 있는 만큼 영통 일대의 전셋값은 이미 2년 전부터 많이 오른 상태여서 지금의 전세가율이 대단히 놀라운 건 아니다”며 “전세수요는 앞으로도 꾸준히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을 늘려서 기존 주택을 많이 사도록 만들어야 전세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인천 남동구 김선유 지회장은 “전세금이 집값을 바짝 따라가고는 있지만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파트 깡통전세가 속출하는 등 사회적 문제로까지 불거지진 않을 것이라고 현장에서는 판단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