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경제=서지혜ㆍ이지웅ㆍ이세진 기자]연일 계속되는 찜통더위에 지친 시민들의 라이프 스타일도 바뀌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7일 서울 낮 최고기온이 34도까지 치솟아 폭염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최저기온이 25도를 웃도는 열대야로 잠못 이루는 밤도 계속되고 있다. 한강, 청계천 등은 심야 시간에도 ‘더위피난민’으로 해수욕장을 방불케했다.
여의도지구대에 따르면 통상 여의도 한강 시민 공원에는 평일 3만, 주말 5만 명 가량의 시민이 방문했지만 최근에는 평일에도 5만 명 가량의 시민이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강 반포지구에 가족과 함께 나온 한모(67) 씨는 “덥다고 무작정 밤새 에어컨을 켜 놓을 수도 없지 않느냐”며 “텐트 칠 자리가 없어 한참을 헤맸다”고 말했다.
더위 피난민이 한강으로 몰리면서 곳곳에서 갈등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최근 열대야로 심야 시간에서 음주를 즐기는 시민이 많아지면서 한강 둔치에서는 ‘야간 음주족’과 ‘심야 자전거족’의 갈등도 커지는 상황이다.
한강 자전거길은 시속 20㎞로 속도 제한이 있지만 야간에는 인적이 드문만큼 ‘속도’를 즐기는 자전거족이 많은데, 야간에 한강에서 음주를 즐기던 시민과 곳곳에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야간 자전거를 타기 위해 한강 뚝섬지구를 방문한 직장인 김모(40) 씨는 “한강 강북 둔치 자전거길을 따라 한강대교까지 가던 중 3~4번이나 충돌사고가 날 뻔했다”며 “곳곳에서 술판이 벌어져 술을 마신 시민이 자전거길을 횡단하기도 해 아찔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낮엔 도서관, 밤엔 PC방…‘폭염 피신族’= 서울 동대문구 3층짜리 주택 옥탑방에 2년째 자취하는 대학 3학년 성모(25)씨는 지난 6일 밤 11시 50분께 방을 뛰쳐나와 노트북을 옆구리에 끼고 집앞 대학 운동장을 향했다.
스마트폰 온도계 앱으로 재보니 옥탑방 온도는 30도를 웃돌았다. 성씨는 “너무 더울 때는 PC방 가서 에어컨 바람이 가장 잘 들어오는 자리에 1시간 정도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몸을 식힌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새벽 2시까지 바람이 잘 부는 운동장 귀퉁이에 앉아 ‘미드’를 보다가 돌아왔다.
더위가 절정을 이루면서 찜통 같은 집안을 벗어나 저렴하게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장소에서 머무는 폭염 피신족(族)도 생겨나고 있다.
에어컨이 없거나 전기세가 염려되는 이들이 피서와 외출을 겸해 공짜 찬바람이 나오는 곳을 찾아내 무더위를 보내고 있다.
경기 일산동구의 주부 전모(33)씨는 5살 난 딸의 손을 잡고 지난 4일 인근 시립도서관 어린이자료실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한낮 더위를 피하려면 에어컨을 계속 틀어야는데 비용이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책도 읽힐 겸 열람실을 찾았다고 한다.
전씨는 “도서관으로 피신한 엄마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거나 전화통화를 크게 하는 등 거의 커피숍 같은 분위기라 민망한 부분도 있다”면서도 “이달에도 낮에 딸과 도서관에서 보내며 여름을 버틸 계획”이라고 했다.
경기 소재 한 시립도서관 관계자는 “7월 이후 무더운 날이면 주부와 아이들로 어린이열람실 등이 아주 떠들썩하다”고 전했다.
서울 마포구 아파트 주민 이모(40ㆍ여)씨 부부는 지난달부터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앞 놀이터에 나가는 일이 잦다.
TV와 조명 등 생활기기의 열기로 꽉찬 집안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1시간 정도 놀이터 옆 평상으로 피신하는 것이다. 똑같은 이유로 마실 나온 이웃이 여럿이라 캔먹주도 마시고 담소를 나눈다.
이씨는 “아이들도 이웃 형들과 뛰어놀다 샤워를 하고 나면 잠을 설치지 않아 좋다”며 “잠자리에 드는 시각이 늦어졌지만 당분간 후텁지근한 밤에는 이렇게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쪽에선 “켜”-다른쪽에선 “꺼”…‘냉방’으로 갈라진 사람들= “여름이 너무 추워요?”
식을 줄 모르는 무더위에 ‘빵빵한 에어컨’을 찾아 카페로, 도서관으로 피서를 나서는 ‘더위 난민’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과도한 냉방에 ‘추운 여름’을 호소하며 에어컨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전국적으로 낮 최고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지만 버스ㆍ지하철 등 대중교통이나 사무실, 카페 등에서는 긴팔, 긴바지에 담요까지 두른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로 6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의 실내 온도는 18도에 맞춰져 있어 에어컨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이곳에서 자리한 대부분 여성들은 가디건으로 찬 에어컨 바람을 피했다.
대학생 김모(20ㆍ여) 씨는 “더위를 피해서 들어온 카페에서 다시 추위를 피하는 식의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며 “봄ㆍ가을에도 잘 안 입는 가디건이 여름엔 필수품이다”라고 말했다.
추운 사무실에서 오래 머물러야 하는 직장인들은 더 큰 고충을 토로한다. 게다가 중앙냉난방으로 실내 온도가 맞춰지는 시스템이라 에어컨을 줄일 수도 끌 수도 없는 사무실들에선 겨울 외투까지 나타났다.
서울 강남구의 한 회사에 다니는 권모(26ㆍ여) 씨는 “에어컨 바람을 직접 받는 자리라 겨울 점퍼를 가져다 두고 입는다”며 “점심시간처럼 잠깐씩 밖에 나갈 때 오히려 몸에 온기가 들면서 날씨가 따듯하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의대 연구팀은 여름철 사무실 냉방 기준이 ‘40세 70kg 남성’ 기준으로 설정돼 있어 여성이 훨씬 더 추위를 느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 때문에 ‘덥다고 부채질하는 남자 직원, 추워서 옷과 담요로 꽁꽁 싸맨 여자 직원’이 함께 일하는 모습이 연출된다는 설명이다.
여름 보충수업이 한창인 고등학교 교실에서도 ‘에어컨 틀자’파(派)와 ‘끄자’파가 나뉘었다.
고등학생 이모(18) 양은 “너무 추워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못 참겠어서 교실 뒤로 나가 에어컨을 끄면 나중에 ‘더운데 누가 껐냐’며 따가운 눈초리를 날린다”고 말했다.
여름철 단골손님인 냉방병도 주의해야 한다.
주로 기운이 없거나 가벼운 두통, 인후통 증상이 나타나는 냉방병은 실외와 실내 기온 차가 많이 났을 때 몸이 적응하지 못해 발생한다.
고대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김양현 교수는 “냉방병 예방을 위해 보통 실내 온도를 실외 온도와 5도 차이 나도록 하라고 권고하긴 하지만 요즘 같은 무더위엔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실내 온도가 18도일 때 18도라는 숫자는 봄가을 기온 정도지만 지속적으로 바람을 쐬는 거라 훨씬 춥게 느껴질 수 있으니 희망온도를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에어컨을 계속 틀어놓더라도 환기를 자주 시키고 물을 많이 섭취하면 냉방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