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왕가의 계보는 바사가(家), 팔츠-츠바이브뤽켄가, 홀슈타인-고토로프가를 거쳐 현 베르나도트 가문으로 내려온다.바사 왕조는 노르웨이-덴마크와 스웨덴이 연합한 칼마르동맹(1397~1523)이 해체된 뒤 독립 스웨덴의 첫 국왕으로 구사타프 바사(1496~1560)가 선출되면서 출발했다. 바사가에서 가장 유명한 이는 구스타프 2세(1594~1612)로, 왕권 강화와 부국강병책을 실시하며 스웨덴의 전성기를 이끌어 ‘대왕’ 칭호를 받았다. 하지만 자식이 사산되거나 요절하는 등 자녀운은 없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막내딸 크리스티나를 왕위 계승자로 선언하고 엄격한 교육을 시켰다. 크리스티나가 6세되던 해 구스타프 2세는 합스부르크와의 전쟁에서 사망한다. 총명했던 크리스티나는 16세되던 해 왕위에 올라 오랜 전쟁을 끝내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어 독일로부터 거액의 전쟁 배상금을 받아내는 등 여러 업적을 이뤘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 스웨덴 최초의 신문 발간, 대학 설립, 미술품 구입에도 열을 올렸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를 왕궁에 초빙해 강의를 듣기도 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카톨릭으로 개종한 그는 당시 신교자만이 국왕으로 인정됐기 때문에 28세 되던 해 왕위를 고종사촌(칼 10세 구스타프)에게 물려 주고 홀홀이 로마로 떠났다. 63세 일기로 사망한 그의 시신은 성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돼 있다.크리스티나 보다 더 극적인 삶은 산 국왕은 고토로프 왕조의 구스타프 3세(1746~1792)다. 그는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의 실제 주인공이다. 귀족과 왕족간의 알력 경쟁이 심하던 당시 그는 의회를 해산시키고 새로운 헌법을 통과시키는 등 왕권 강화에 힘쓰다, 가면무도회장에서 암살 당했다. 오페라를 좋아해 직접 극작도 했다. 그는 프랑스 로코코 양식에 감명받아 이를 응용해 스웨덴 왕실을 장식했는데, 스칸디나비안과 로코코가 결합한 양식을 ‘구스타비안’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그는 오랜 기간 후사가 없었고 젊은 여자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동성애자란 소문에 시달려야했다.현 베르나도트 가문은 나폴레옹 휘하에서 활약했던 장군 장 밥티스트 베르나도트(1763~1844)가 시조다. 그의 부인 데시데리아는 나폴레옹의 첫 약혼자였다. 나폴레옹의 연적이었던 셈이다. 나폴레옹이 조세핀과 결혼하면서 파혼당한 그녀는 나폴레옹과 경쟁관계였던 베르나도트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에 이른다. 베르나도트는 1806년 프로이센 왕국과의 전쟁에서 당시 적군이던 스웨덴군을 우호적으로 대했고, 이를 계기로 후계자가 없었던 칼 13세 스웨덴 국왕의 왕위 계승자로 지목됐다. 나폴레옹은 데시데리아에 한 자신의 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베르나도트의 왕위 계승을 마지못해 승락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 베르나도트는 변절한다. 반나폴레옹 연합군에 가담해 프랑스 내부군 정보를 제공하는 등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1818년 칼 요한 14세로 스웨덴의 정식 국왕에 올랐다. 그는 절대군주의 몰락을 반면교사 삼아 온건한 입헌 군주가 됐다. 프랑스와의 관계도 회복하고, 친러시아 입장이면서도 지지하지 않는 등 중립을 유지했다. 현재 스웨덴의 대외정책의 기본원칙인 중립주의의 틀이 이 때 잡혔다. 한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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