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대학 내에서 ‘갑(甲)’인 교수나 교직원이 아닌 ‘을(乙ㆍ무기계약직)’이 ‘병(丙ㆍ근로장학생)’에게 성추행을 했다면 이 무기계약직원은 어떤 징계를 받게 될까?
지난해 8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이같은 사건이 발생했지만 학교측은 해당 직원의 징계를 두고 “공무원이다” “공무원이 아니다” 라는 애매한 태도로 혼란을 부추겨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교직원 징계에 대한 학교의 의지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지난달 24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자신이 PD로 일하는 학내 부서의 근로장학생이던 이 학교 학생 A씨의 몸을 만지고 강제로 입을 맞춘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한예종 무기계약근로자 이모(43) 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초범임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나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아 실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그동안은 교수의 권력을 악용한 ‘교수-학생’ 관계에서의 성추행만이 주로 논란이 됐다. 하지만 대학내에는 교수와 학생 관계뿐만 아니라 교직원과 근로장학생 혹은 아르바이트생 등 여러가지 ‘상하 관계’가 공존한다. 따라서 이 관계에서도 성추행 등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충분한데도, 문제 해결에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학교는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이기 쉽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 A씨는 지난해 8월 사건 발생 직후 학교에 ‘가해자가 사표를 낸다면 이를 수리하지 말아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징계 절차가 시작되자 무기계약직 이씨는 사표를 냈고 학교는 곧바로 이를 수리한 것. 항의하는 피해자에게 학교가 들려준 대답은 “가해자가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의원면직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학교는 이씨에게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징계령’을 적용해 “비위의 도가 중하고 중과실”이라며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던 터라 학교 측이 상황마다 이씨의 지위를 다르게 해석한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한예종 총무과 관계자는 “한예종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기관이라 문체부 무기계약근로자 관리 규정에 따라 징계위원회 운영 등 절차에 관한 사항에 대해 공무원징계령을 준용했다”면서도 “무기계약직이 엄밀히 공무원은 아니기 때문에 사표제출을 막을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은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학교가 사표수리를 철회하고 가해자를 해고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학내 성추행 사건에서 가해자가 도망치듯 사표를 내는 관행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란 사무국장은 “가해자가 공무원이든 무기계약직이든 계약직이든, 법리적인 문제를 떠나 학교측에서 징계절차를 완료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던 걸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최 사무국장은 “가해자 사표 수리는 더 이상 내부에서 진상조사나 징계를 할 대상자를 사라지게 해 완전한 해결방안이 결코 될 수 없으며 문제를 미완으로 덮는 방법으로 악용되곤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씨는 현재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로 확인됐다. 법정구속된 이씨의 변호인측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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