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국 왕실은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부계(父係) 상속 원칙과 남자만 왕위를 이은 동양과 달리 모계(母係) 상속과 여자도 왕위를 잇는 문화로 왕실가계의 일관성을 유지해온 점이 특징이다.

앵글로색슨족의 브리튼섬 세력 확장에서 시작된 웨섹스 왕가는 노르만, 플랜태저넷, 랭커스터, 요크, 튜더, 스튜어트, 하노버 왕조 등을 거쳐 오늘날의 윈저 왕가에 이른다. 노르만왕가 이후 거리는 멀지만 혈통의 연속성은 유지돼 왔다.

언제부터를 영국 왕실의 시작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지만 그 시발점에 앵글로색슨족이 있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9세기 7왕국으로 쪼개져있던 잉글랜드는 웨섹스의 알프레드 대왕에 의해통일된다. 하지만 혈통으로 영국 왕실의 시작을 따진다면 11세기 브리튼 섬을 무력으로 점령한 노르만 왕가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윌리엄1세로 시작된 노르만 왕조는 그의 막내 아들 헨리 1세가 세상을 떠난 뒤 위기에 처한다. 윌리엄1세의 조카 스티븐이 왕위를 이었지만 헨리 1세의 딸 마틸다가 왕위계승권을 주장한다. 마틸다는 프랑스 앙주 백작과 결혼했다. 결국 스티븐의 뒤를 이은 것은 마틸다의 아들 헨리2세다. 부계는 프랑스 앙주 백작이다. 동양으로 치면 헨리1세의 프랑스 외손자가 왕위를 이은 셈이다. 헨리 2세가 바로 앙주 왕가, 즉 플랜태저넷 왕가의 시작이다.

플랜태저넷 왕조의 마지막 왕 리처드 2세의 정치에 불만을 품었던 사촌들이 귀족들을 규합해 일으킨 반란이 성공해 막을 열게 된 것이 랭카스터 왕조다. ‘붉은 장미’가 상징인 랭카스터 왕가는 ‘백장미’를 상징으로 쓰는 요크 가문과 장미전쟁을 벌인다. 최후의 승자는 요크 가문이었다.

플랜테저넷 왕가 이후 방계인 랭커스터 왕가와 요크 왕가가 왕위를 잇는다. 가문의 서열에 따라, 또는 직계로 왕위가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랭커스터나, 요크 같은 이름이 붙었다. 공작이나 백작 때의 영지 이름이 왕가의 이름으로 쓰인 것이다.

튜더왕가는 리치먼드 백작 에드먼드 튜더와 랭커스터 가계의 마거릿 보퍼트 사이에서 태어난 헨리7세가 시작이다. 헨리7세는 요크 왕가의 마지막 왕인 리처드3세를 무력으로 물리치고 튜더 왕조를 연다.

튜더왕조의 엘리자베스1세는 미혼이어서 자식이 없었다. 마침 그녀의 이복언니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1세다. 우여곡절 끝에 메리1세의 아들인 제임스 스튜어드가 엘리자베스1세의 뒤를 잇는다. 스튜어트 왕조 때부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하나로 묶인다.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앤 여왕도 후사가 없었다. 그래서 제임스1세의 후손으로 앤 여왕의 먼 친척 오라버니뻘인 독일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그 루트비히가 조지 1세로서 즉위해 하노버 왕조가 열린다.

하노버 왕조는 빅토리아 여왕 때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최전성기를 구가한다. 인도 황제를 겸한 것도 하노버 왕조 때다. 빅토리아 여왕은 자녀들을 모두 유럽 왕가와 혼인시켜 노년에는 ‘유럽의 할머니’로 불렸다. 덕분에 지금의 영국 왕실도 왠만하면 유럽 왕실들과 연결된다.

빅토리아여왕 본인은 외사촌이며 독일계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 공자와 결혼한다. 둘 사이의 아들이 에드워드7세다. 이때부터 영국의 왕가는 작센-코부르크-고타왕가로 바뀌고 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이 적국이 되면서 1917년 윈저왕조로 개명한다. 윈저왕조의 첫 국왕은 현재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할아버지인 조지5세다.

이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