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태열 기자]#1. “메르스 환자 입원했던 병원명단입니다. ○○병원, ○○병원…”, “○○병원은 메르스 환자가 있는데 환자가 다 나갈까봐 숨기고있다고 하네요. 그 근처에도 가지마세요”
직장인 김모(48) 씨의 카카오톡 등 SNS는 3일에도 불이 날 지경이다. 지인들이 ‘메르스 괴담’을 실시간으로 계속 보내주기 때문이다.
#2. 초등학생 1명과 유치원생을 키우는 전업주부 이모(42) 씨는 최근 감기증상이 있어 동네병원을 거쳐 좀 더 큰 대학병원을 가려고 예약을 했지만 불안감에 하루 전날 예약을 취소했다. 그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다녀갔다는 소문을 듣고서다. 지인은 ‘메르스 위험병원’으로 네티즌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며 절대 그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하룻새 또다시 5명의 메르스 추가감염자가 나와 3일 현재 총 30명의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하고 3차감염자가 또 발생하면서 일반국민들의 ‘메르스 공포’가 극에 달하고있다. 특히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지역과 병원 등의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하게 퍼져나가면서 불안감은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 등의 실명을 공개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보건당국은 의료기관의 실명공개는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불허방침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3일 오전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필요한 정보는 공개해야 한다”고 하면서 병원공개 여부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현재 정부의 입장은 비공개 방침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메르스 관련 관계부처 장관회의 결과 및 향후 대책’에서 “병원 이름을 공개하기 보다는 확진환자 조회시스템 통해 병원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권준욱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도 “의료기관의 이름을 전체적으로 공개할 경우 해당 의료기관에 입원한 환자나 이용한 분들이 불필요하게 오해를 받게 되거나 과도한 불안감이 조성될 것”이라고 했다.
메르스 관련 병원이 공개될 경우 엄청난 혼란이 뒤따른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이런 시각엔 병원 관계자들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서울 시내 대형병원 관계자는 “메르스 병원이라고 낙인 찍히면 환자들이 불안해서 살 수 없고, 퇴원하려고 줄을 설 것이 뻔하고 그러다보면 병원을 옮기는 등의 과정에서 큰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의 반응은 다르다. 일각에선 메르스 환자가 단기간에 30명이 발생하고 3차 감염자까지 나오는 등 병 확산에 속도가 붙은 만큼 지역과 병원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영주(35) 씨는 “보건당국이 공식적으로 비공개를 고수한다고 해도 실효적으로 비공개가 되는 것은 아니다. SNS의 특성상 정보를 막으려고 하면 할수록 네티즌들의 호기심이 증폭해 더욱 세세한 내용까지 밝혀지기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시민은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이른바 ‘신상털기’나 ‘정보털기’는 정평이 나있다. 실제 어린이집 폭행사건이나 뺑소니 운전자 등 경찰이 손도 못대는 사건들도 네티즌 수사대가 나서면 얼마 지나지않아 모든 정보가 낱낱히 밝혀진 사례들도 많다”며 “오히려 과감하게 (병원을)공개하면 불필요한 괴담유포도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국정부의 공개압박도 있다. 한국인 6명을 포함해 19명의 메르스 감염 의심자를 격리한 홍콩은 한국 정부에 발병 병원 명단을 요구해 자국민에 공개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해 유사한 상황을 경험한 미국은 초기에 대부분의 정보를 공개한 뒤 정면돌파하는 방식을 채택, 우리 정부의 대응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도 많은 뒷말을 낳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첫 에볼라 환자가 발생하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텍사스 건강 장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환자라며 병원 이름을 공개했다. 환자 이름과 거주지 등도 알린 뒤 주변인들을 곧바로 격리시켰으며 지난해 5월, 미국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을 때도 미 보건 당국은 즉각 모든 자료를 공개했다. 환자가 머물렀던 동선과 진료받은 병원, 치료 경과 등 최신 정보를 브리핑을 통해 시시각각 알렸다.
물론 이는 미국의 경우이고, 우리는 다르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지금같은 혼란상황에서 병원실명이 공개되면 발표즉시 모든 환자가 진료거부, 퇴원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일각에서 병원이 환자가 다 빠져나갈까봐 병원들이 반대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난친 억측이며 의료기관끼리 충분히 정보를 공유한 상태에서 차분하게 대처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