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2013년도 부터 였을 것이다. 당시 원탑이었던 아주부 프로스트와 블레이즈(현 CJ 엔투스)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때가 있었다. 후발 주자들은 아주부 프로스트와 블레이즈를 파해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을 분석해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해 내고자 한다.
특히 게임을 제대로 알고 분석해 줄 수 있는 전문 코치의 등장은 전체 시스템을 바꿔버리는 계기를 낳는다.
이 코치들은 매일마다 게임상에서 일어나는 지표들을 확인하고 동영상으로 상대 움직임을 분석하며, 와드 위치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전체 게임을 하나하나 뜯어 보기 시작한다. 어떤 타이밍에 어떤 아이템을 뽑으면 몇퍼센트 확률로 유리하다는 계산을 하는 식이다. 이런 요소들을 하나 둘 모아가며 차이를 만들어 나가고,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만의 필승법을 하나 둘 발견해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필승법을 가동했을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이들은 그다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시즌 SK텔레콤 T1(이하 SKT)의 플레이는 이런 현상이 극에 달해 있다. 각자 챔피언별 상성이나 전체 조합별 카운터를 픽할 수 있으면서도 이들이 라인전에서 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 엄청난 시나지 효과를 발휘한다. 소위 '반반구도'만 가져가도 이미 조합상에서 카운터를 치고 있는 SKT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SKT의 미드라이너, 페이커와 이지훈을 견제하기 위해 밴픽 카드를 소비하는 사이 마린과 뱅, 뱅기는 자유롭게 상대 조합을 카운터 치기 위한 픽을 설계할 수 있다. 그 모든 견제에도 불구하고 일단 미드라이너에 세워두기만 하면 최소한 밥값은 하는 두 미드라이너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밴픽 구도에서 승리를 했다는 점은 게임 전체를 자신들의 페이스로 이끌어 나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SKT가 밴픽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게임'으로 이끌어 나갈 수 없는 경기가 두개 나왔다. 그리고 그 시초가 바로 프나틱과의 대결에서 나온 것이다.
* 탑라인을 터트리는 설계
프나틱은 밴픽단계에서 렉사이를 밴해버렸다. SKT 정글러 뱅기가 지금까지 사용했던 렉사이를 막아보겠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칼리스타를 밴하면서 미쳐 날뛰는 구도를 차단하겠다는 심산이다. 자신들의 가장 큰 장기인 탑 정글 시너지를 효율적으로 내면서 마린을 압박하는 구도를 처음부터 정하고 간 셈이다. 이에 맞선 SKT는 상대방이 잘하는 챔프, 헤카림과 그라가스 그리고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우르곳을 밴한다.
* SKT 라인전 우세, 적극적인 갱킹으로 카운터 치는 프나틱
SKT의 강함은 역시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시작하자마자 압도적으로 CS를 먹으며 유리한 스노우 볼을 굴려 간다. 두 팀간의 차이는 초반 정글러의 위치를 보면 극명하게 나뉜다. 시작 3분만에 무시무시한 프리징을 하는 후니의 트랩에 이어 바로 탑라인을 갱킹하는 레인오버가 킬을 따온다.
이 타이밍에 정글러 뱅기는 봇라인을 침투한다. 그리고 상대 정글러와 탑라이너의 위치가 파악되자마자 바로 용을 가져오면서 응수한다. 사실상 서로 손해는 없었던 셈이다.
또 한번 변수는 탑에서 발생한다. 상대 라이너를 집에 돌려보낸 나르가 미드라인을 파고 들면서 킬을 따낸 것이다. 당연히 마린을 집에 돌려 보냈으니 라인 상태를 초기화 시키고 처음부터 라인전을 할 줄 로만 보였던 심리적 트랩을 보기 좋게 파고들어 버린 셈이다. 특히 같은 시점에 세주아니가 봇에서 얼굴을 비추고 있으니 미드라이너는 안심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기가 막힌 더블 갱킹이었다.
* 라인전 포기 메타 등장
이러한 전술을 메타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다른 팀과는 차이가 있는 플레이인점은 극명하다. 후니는 라인을 지독하게 프리징해서 럼블을 유도하고, 럼블에게 심리적 트랩을 건다. 이걸 먹으러 오면 세주아니가 갱킹을 하러 들어온다는 트랩이다. 허겁지겁 럼블이 CS를 먹는 사이 후니와 레인오버가 라인을 파고들면서 게임을 풀어 나간다. 이번엔 봇에서 전과가 나온다.
세주아니가 다시 과감하게 파고 드는 사이 봇라인이 활약하고, 함께 봇에 합류한 나르와 세주아니가 어그로를 다 끌어 버린다. 나르의 아름다운 궁극기가 터지는 타이밍에 시비르와 카시오페아의 위치가 이 경기의 핵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연이은 드래곤을 가져 오면서 프나틱은 초반 스노우볼을 굴려 나가기 시작한다.연이은 교전에서 점멸이 빠진 마린은 이제 두렵다. 특히 연이은 교전에서 킬을 쓸어먹고 돌아온 후니와 교전이 쉽지 않았다.
* 오브젝트 컨트롤의 미학
이 런 상황에서도 SKT는 누누의 강점을 활용해 오브젝트를 챙겨오는데 성공한다. 상대적으로 세주아니가 시야석을 가지 못한 점을 이용해 시야를 뺏어 버린 뒤 버스터딜을 통해 용을 챙겨 오는 식이다. 때문에 초반 글로벌 골드 차이는 크게 나지 않았다. 상대방에게 킬은 내줬지만 자신들은 용과 CS를 챙겨오는 식으로 게임을 운영해 나가는 식이다. 특히 누누+럼블의 한타 시너지가 있는 만큼 정면에서 열리는 한타는 결코 지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었다.
* 조합 vs 조합 승리팀은 누구?
후반에 도달하자 역시 서로가 서로의 조합을 바탕으로 싸움을 걸기 시작한다. 프나틱은 세주아니의 무시무시한 이니시에 이어 나르가 진입하고 그 사이에 카시오페아와 시비르가 미쳐 날뛰는 그림을 설계한다. 상대방이 이니시를 걸지 못하도록 만드는 전술이다.
SKT는 이에 맞서 누누 궁극기로 들어오는 상대를 받아친다음 그 위에 럼블 궁극기를 뿌리고 말이 안되는 딜로 상대방을 녹인 다음에 루시안이 미쳐 날뛰는 그림을 그려 나간다.
두 팀다 극에 달한 플레이를 하지만 나르와 시비르가 잘커버린 프나틱에 비해 상대적으로 탑에서 고통받던 마린이 성장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 감동과 환희, 좌절의 순간
후반 30분대에 접어들면서 두 팀은 서로 물고 물리는 전투를 이어 나간다. 코어아이템을 뽑은 마린은 두말할 필요 없었다. 일일히 설명하기도 어려울 만큼 슈퍼 컨트롤이 수시로 터졌고 이를 활용한 양팀간의 전투는 그야 말로 백중지세였다. 프나틱 입장에서는 럼블과 루시안을 잡아내기위해 안간힘을 다하지만 울프의 슈퍼세이브에 페이커의 궁극기를 통해 시간을 버는 SKT를 감당해 내기 어려웠고, 그 사이 SKT는 카시오페아나 시비르 둘 중 한명을 잡아내기만 해도 힘을 뺄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조합상의 이득을 챙겨온다.
단, 궁극기가 빠지면 조합이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이 SKT의 최대 난제였다. 이 점을 잘 아는 프나틱은 어떻게든 SKT챔프들의 궁극기가 없는 순간에 이득을 취하기 위해 싸움을 걸거나 오브젝트를 취하려고 하고, SKT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면서 시간을 벌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충실히 오브젝트를 챙겨온 SKT는 다음 드래곤을 먹으면 드래곤 5스택이 됐고, 결국 바론과 드래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프나틱을 강요한다. 어찌됐건 SKT는 "우리는 풀 궁극기가 차있는 상황에서 싸우겠다"라고 말한 셈이고, 프나틱은 울며 겨자먹기로 일단 붙어야 했다. 결국 승부는 바론 앞에서 갈릴 수 밖에 없었다.
좁은 지역에 서서 상대방이 들어오면 럼블 누누 궁시너지로 대박을 내고자 했던 상대방에게 이니시가 걸린다. 그리고 나르가 미쳐 날뛰면서 궁극기를 온몸으로 다 받아치고 벽으로 밀어 내기만 하면 프나틱의 승리인 전투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미쳐 날뛰었던 나르의 분노가 없었다. 신은 SKT의 편이었다.
이 아름답고 훌륭한 게임의 끝은 뱅이었다. CJ 엔투스와 준결승전에서 보여주듯, 누누+룰루의 이동속도를 바탕으로 궁극기까지 합쳐지면서 놀라운 속도로 적진영을 파고들어버리며 펜타킬을 기록한다. 명 경기에 어울릴만한 피날레였다. =미국 탈라하시 안일범 기자
탈라하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