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 “목숨까지 걸겠다”며 결백을 주장한 이완구 총리가 결국 재임기간 63일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사실상 중도하차다. 이로써 이 총리는 최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총리 지명을 받은 이후 무려 24일동안 장내외 검증공방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루더니, 인사청문회 도입 이래 최저 임명동의안(찬성률 52.7%)으로 ‘턱걸이 총리’ 별칭까지 얻었다.
지난 2월 17일 마침내 공직생활 41년 만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총리직에 오르며, 충청권 맹주이자 차기 대권주자군에 분류되면서 잠룡 중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 충청권의 우호적인 민심을 바탕으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자신과 차남의 병역, 재산 형성 등 갖가지 의혹도 동시에 해소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야당조차 앞으로 전개될 각종 선거를 의식, 인준과정에서 불편함을 애써 씻어내려 노력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청와대 역시 이 총리에게 힘을 실었다. 친박실세이자 여당 원내 대표출신 답게 이 총리는 40여년 동안의 공직 경험과 도지사 시절 리더십 등으로 내각 장악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여론도 대체적으로 추락한 지지율을 만회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이자 조건이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3년차를 맞아 이제 안정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부응하듯 이 총리는 지난달 부정부패척결 관련 대국민담화문을 전격 발표했다. 향후 30년의 성장을 위한 토양을 새롭게 한다는 각오로 부패척결에 범정부적 역량을 결집해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이 총리의 호언은 이 것이 끝이었다. 부정부패 척결을 향해 던진 ’돌직구‘가 부메랑이 돼 자신을 덮치고 만 것이다. 첫 사정대상에 오른 경남기업의 성완종 전 회장이 죽음으로 저항하면서 일거에 구도가 흐트러 진 것. 성 전 회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이 총리를 지목하며 남긴 “사정 대상 1호가 되어야 할 사람이 무슨 사정이냐”는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됐다.
이 과정에서 사태를 더 악화시킨 것은 정작 이 총리의 언행이었다.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진실여부와는 별개로 여러차례 말을 바꾸면서 품격과 능력을 상실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의리’ ‘배신’ ‘인생무상’ 등의 푸념이 들려 온 곳은 다름아닌 충청권이었다.
결국 이 총리는 안팎의 시련을 견뎌내지 못하고 백기를 내 들었다. 당일 오전까지만해도 대통령 부재 중 국정운영에 차질없이 임하겠다는 그 였지만 더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세종관가에서 ‘초심 상실’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 제기된 때였다.
정치 일선에서 이 총리는 평소 “국민 이기는 장사없다“는 말을 즐겨 써왔다. 세월호 사고 등 버거운 국정과제 앞에서 인내심을 발휘했고, 야당을 상대로 타협과 소통을 강조해 온 노력도 일거에 수포가 되고 만 셈이다. ‘너무 과하면 탈이 난다’는 말 그대로 결국 이 총리는 잔인한 4월을 맞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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