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에 출전한 군인 프로골퍼 허인회(일병)의 호쾌한 티샷 장면. 그는 PX에서 사온 과자를 그늘집에서 간식으로 먹었다.  사진제공=KPGA
23일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에 출전한 군인 프로골퍼 허인회(일병)의 호쾌한 티샷 장면. 그는 PX에서 사온 과자를 그늘집에서 간식으로 먹었다. 사진제공=KPGA
허인호, 양지호의 이름 뒤에 붙은 'm'은 밀리터리, 즉 군인 신분임을 나타낸다. 프로대회에서 이런 표기는 세계 최초다.
허인호, 양지호의 이름 뒤에 붙은 'm'은 밀리터리, 즉 군인 신분임을 나타낸다. 프로대회에서 이런 표기는 세계 최초다.

#2003년 5월 24일(현지시간), 실내 요트경기가 열릴 정도로 규모가 큰 프랑스 파리의 베르시 경기장은 술렁거렸다. 세계 탁구선수권 남자단식 4강전에서 세계 61위 주세혁(당시 23세)이 세계 9위 칼리니코스 크레앙가(그리스)를 4-1로 일축하고 결승에 올랐기 때문이다. 전날 8강전에서 세계 2위 마린(중국)에게 4-3으로 역전승을 거뒀기에 한국의 무명선수 주세혁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특히 주세혁의 신분이 ‘군인’(상무 소속)이었던 것이 화제였다. 다른 나라의 기자들은 한국기자를 붙잡고 ‘어떻게 현역 군인이 이렇게 탁구를 잘 칠 수 있는가’를 연신 물었다. “주세혁은 총도 잡고, 라켓도 잡느냐?”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의무병제와 엘리트선수 집단인 상무 부대에 대해 설명하느라 제법 힘이 들었다. 비록 25일 결승에서 패했지만 주세혁의 은메달은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지금까지 거둔 한국 남자탁구 최고 성적으로 남아 있다. #2012년 8월 10일 열린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3-4위전에서 한국은 숙적 일본을 2-0으로 완파하고,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의 쾌거를 달성했다. 경기 전 일본의 우세가 예상됐다. 전 세계 주요 스포츠 베팅업체 중 한국의 우세를 점친 곳은 한국의 스포츠토토 뿐이었다. 결과가 정반대로 한국의 완승으로 나오자 그 비결이 한국선수들의 병역 특혜라는 주장이 국내외에서 대두했다. AP통신은 결승 골을 넣은 박주영의 멘트(우리 선수들 모두 병역이 면제돼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 점이 기쁘다)를 크게 보도했고, 일본에서는 “일본선수들은 이기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 “다 병역면제 때문이다. 우리(일본)도 메달 못 따면 군대를 보내야 한다” 등의 반응이 잇달았다. ‘세계 최고의 리그는 군대스리가’라는 우스갯소리도 그 때 화제가 됐다. #전적으로 시인할 수는 없지만 전통적으로 올림픽(동메달까지 면제)과 아시안게임(금메달만 면제)에서 한국의 남자선수들이 막판 엄청난 뒷심을 발휘하는 데는 병역이라는 특수한 사정이 자극제가 돼왔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막판 3위로 처졌다가 눈부신 막판 역주로 3초차 2위로 골인했는데, 그 이유가 ‘병역 면제를 은메달까지로 잘못 알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아쉽게 2위로 골인했는데 태극기를 들고 너무 환호를 올린 것(사실 세계 2위도 잘한 것인데 당시만 해도 한국의 금메달 지상주의는 심했다)도 사실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다. #‘군대 스포츠의 나라’ 한국은 2015년 봄 ‘군인 프로 골퍼’라는 진기한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세계군인체육대회의 개최국으로 전력 강화를 위해 프로선수들을 대거 상무로 받아 들였고, 경기력 강화 차원에서 프로 대회에 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첫 무대는 23일 시작된 시즌 개막전 동부화재 프로미 오픈이다. 일병 허인회 등 6명의 군인 골퍼는 거수 경례 사진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이날 KPGA의 공식 순위표에는 세계 최초로 ‘M’이라는 약자가 등장했다. M은 선수 이름 옆에 붙어 ‘군인(Military)'을 뜻한다. M 꼬리표를 단 선수 6명 중 상병 방두환이 1언더파 12위로 최고 성적을 냈고, 스타플레이어 출신 허인회(3오버파 63위), 상병 양지호(4오버파 76위) 등은 컷탈락을 걱정하게 됐다.

#이들 6명은 프로에 앞서 군인이다. 연습라운드 때 만난 일병 허인회는 캐디백에서 아이들이 즐겨 먹는 과자를 꺼냈다. 쑥스러웠는지 “PX에서 사왔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프로 후배가 “그거 어디서 먹어요?”라고 묻자 허 일병은 “그늘집으로 가서 먹지 뭐”라고 쑥스러운 답을 내놨다. 비싼 그늘집에서 면세품 과자를 먹는 군인 프로골퍼의 모습이 생경하기만 하다. #압권은 포상. 군인신분인 만큼 상금을 받을 수 없다. 해당되는 상금은 다른 프로선수들에게 나눠진다. 유일한 인센티브는 휴가. 코리안투어에서 우승을 하면 1박2일의 특별휴가가 주어진다. 이번 동부화재 프로미오픈의 경우 우승상금 8,000만 원을 받지 못하는 대신 누리는 휴가인 만큼 ‘8,000만 원짜리 외박’인 셈이다. 그 나마도 2위는 없다. 오는 10월 열리는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에서 우승하면 휴가가 하루 늘어 2박3일이라고 한다. 피를 말리는 것은 향후 군인세계선수권 대회 선발전을 치르는데 엔트리가 6명인 까닭에 김남훈과 함정우 등 국가대표 출신 아마추어 2명을 포함해 총 8명중 2명은 탈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떨어진 2명은 상무 골프단에서 떨어져 나와 일반부대로 배치된다고 한다. 군대 생리를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는 거의 공포에 가까운 일이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군인 프로골퍼들 파이팅이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편집장 @ilnam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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