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지난 10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961년 국교단절 이후 54년 만에 ‘역사적 회동’을 가졌습니다. 이어 14일 미 정부는 35년 만에 쿠바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죠.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전복을 노렸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역사적 과오’ 이후 50여 년 만에, 오바마 대통령은 양국간 국교 정상화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이번 ‘세계전사 엿보기’에선 미국과 쿠바 간 반백년 외교관계 단절직후 발생한 1961년 4월의 ‘피그스만 침공사건’(Bay of Pigs Invsion)에 대해 다뤄볼까 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냉전이 본격화됐지만 미국의 ‘반공’의지는 매번 성공으로 귀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벌어진 베트남전과 마찬가지로 1961년 4월 15일부터 20일까지 6일 동안 전개된 피그스만 침공작전 역시 미국의 ‘완패’였죠. 카스트로 정권의 교체와 쿠바의 공산화 저지에 실패한 작전이란 오명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계인들은 제2차세계대전이란 엄청난 전쟁을 겪으면서 평화를 기대했지만 곧 ‘냉전’이란 새로운 전쟁에 직면합니다. 미국은 옛 소련과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을 양분하며 세계를 호령하기 시작했죠.
자유ㆍ민주주의 이념의 수호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했던 미국은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았지만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닥쳐온 쿠바의 공산화 ‘위기’는 당시 미국 정부를 긴장케 만들기에 충분했죠.
쿠바의 국민영웅 카스트로는 쿠바혁명을 일으켜 1959년 독재자인 풀헨시오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정권을 차지합니다. 바티스타 정권의 부정부패에 진저리치던 국민들은 외국인의 토지소유 금지, 토지 무상재분배 등 농지개혁을 시도한 카스트로를 열렬히 지지하죠.
카스트로 정부는 석유기업인 스탠더드 오일, 에소 등 미국계 기업 자산을 몰수하고 국유화 등을 추진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이권이 점점 줄어들자 친미성향의 쿠바인들도 미국으로 망명하죠.
미국은 사탕수수 생산에 경제의 대부분을 의지하고 있던 쿠바를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사탕수수 금수조치를 내리고 동시에 주요 수출품 수출도 중단시킵니다. 결국 1961년 1월 국교단절에 이릅니다.
사실 카스트로를 축출한다는 계획은 이미 1960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 정부시절부터 수립된 것이었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1960년 3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미국의 개입을 피하는 내용을 담고있는 안을 제출했고 그해 8월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작전을 위해 1300만달러의 예산을 승인하죠.
미국은 10월까지 게릴라식 침투와 보급품 투하 지원 등의 방식으로 정권 전복을 노리지만 실패하고, 게릴라 전략은 상륙작전으로 수정됩니다.
작전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갑니다. 1960년 11월, 앨런 덜레스 CIA 국장과 리처드 비셀 부국장은 이같은 계획을 대통령에 막 당선된 케네디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되는데요. 케네디 대통령은 이듬해 4월, 1500명의 쿠바 이민자들로 구성된 2506여단을 쿠바에 투입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쿠바에는 이전 정권과의 투쟁과 게릴라전으로 단련된 병력과 국민들의 지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스트로와 함께한 혁명영웅 체 게바라도 있었습니다.
피그스만 침공은 6일 동안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처참한 실패로 케네디 정부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죠. 대신 쿠바에는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음회에서는 그 6일간의 전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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