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수 작가의 ‘권력 3부작’완결편 권력에 기생하는 인간의 욕망 해부 반전 거듭하는 빠른 전개·은유적인 대사 멜로 벗고 시청자들에 묵직한 메시지 지독한 허무와 실낱같은 희망의 이중주

“내는 검삽니다. 검사한테는 국민이 성역입니다.”( ‘펀치’12회 중)

더 없이 나쁜 놈이 이런 말을 한다. 비리로 쌓아올린 권력으로 검찰총장(조재현ㆍ이태준 역)이 돼 대통령의 자리까지 탐하는 자다. 덜 나쁜 놈이 있다. 시궁창을 기어올라 검사(김래원ㆍ박정환 역)가 된 엘리트 청년. 눈 앞의 탄탄대로를 터주는 검찰총장을 위해 가족까지 버린 검사는 시한부(뇌종양) 판정을 받고 개과천선한다. ‘정의’보단 ‘목적’이 앞서는 개과천선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내부고발자’의 길로 접어들고 보니 이 조직은 ‘악의 소굴’이 따로 없다. “법은 하나”라는 말을 달고 다니는 법무부 장관(최명길ㆍ윤지숙 역)은 ‘괴물’을 잡으려다 더 큰 괴물이 된다. 법무부 장관의 법은 개인의 욕망을 위한 법이고, 그의 목표는 청와대에서의 임기 5년이다. 이 안의 모든 권력자는 ‘쌓이면 쌓일수록 더러워지는 돈과 재떨이’와 다름 없다.

SBS 월화드라마 ‘펀치’는 박경수 작가의 ‘권력 3부작’의 완결편으로 불린다. 정치권력을 그린 ‘추적자’, 자본의 권력을 그린 ‘황금의 제국’에 이어 공권력(법)을 정조준하고 그 안에 기생하는 인간들의 욕망을 해부한다.

지난 22일 기준 ‘펀치’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안방을 찾는 주중 미니시리즈 가운데 유일하게 두 자릿수(12.3%ㆍ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시청률을 넘어섰다. 물론 대단한 격차는 아니다. 다만 그 흔한 아이돌 연기자도 멜로도 없는데 ‘펀치’가 시청자를 사로잡은 이유로 몇 가지 분석이 나온다.

▶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못했던 현대극= ‘펀치’는 시한부 3개월 판정을 받은 검사가 거대한 권력을 향해 끊임없이 주먹을 뻗는 드라마다. 이 곳엔 ‘선악’의 개념은 없고, 더 나쁜 놈과 덜 나쁜 놈만이 있다. 공권력의 틀 안에서 정의를 논하나 그들의 정의에는 개개인의 욕망이 득실거린다. 권력을 향한 끝도 없는 아귀다툼으로 점철된 세계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지독한 허무주의가 팽배하고, 그 부패한 세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건 그 세계에 젖어있다 생애 마지막 순간에 빠져나온 시한부 검사라는 설정은 실로 비극적이다. 그럼에도 더 나은 세상이 올지 모른다는 흐릿한 희망이 징그러운 현실 속 유일한 판타지로 작용한다.

선 굵은 소재와 구성, 캐릭터를 바탕으로 기존 드라마에선 볼 수 없었던 스토리를 끌고 가는 ‘펀치’는 멜로 등의 ‘강박’을 버렸다는 점에서 유의미하게 읽힌다. 전문가들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며 시청자에게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줬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정통사극이 아닌 현대극에선 현실정치를 환기하는 드라마가 ‘모래시계’ 이후 흔치 않았다.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는 정의 문제를 다루며 시청자들의 갈증을 해소했다”고 평했고,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를 “현실에 대한 갈증”이라고 봤다. 현실은 사실 드라마보다 더 비극적이었다. 부패한 사회의 곳곳엔 무너진 공권력이 자리했다. 드라마는 자동차 급발진, 의약품 리베이트, 병역비리 등 익히 알고 있는 사건을 검찰비리로 꼼꼼하게 묶어 이 땅의 권력자들의 민낯을 해부한다.

드라마를 기획한 한정환 EP는 “어른이 된 사람들은 누구나 신념과 욕망이 충돌한다. 그 과정에서 종종 위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신념을 따를 것인지, 욕망을 따를 것인지를 고민하는 드라마가 ‘펀치’”라며 “숨겨진 아들이 누구인지를 찾는 드라마가 아니라 모두가 고민해왔던 신념과 가치관을 다루며 갈증을 해소하는 드라마”라고 말했다.

▶ 은유적인 대사의 ‘5분 드라마’=대중의 요구와 맞아떨어진다고 해서 ‘흥행’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펀치’는 시청자들 사이에서 마성의 ‘5분 드라마’로 불린다. 박경수 작가 대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반전을 거듭하는 빠른 전개와 은유적인 대사는 ‘펀치’의 묘미이고, 작가와 절묘한 호흡을 이룬 이명우 PD의 밀도 높은 연출력은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다.

‘펀치’ 5회 중 죽음을 직감한 박정환 검사가 납골당 팸플릿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있었다. 박경수 작가는 이 장면에서 ‘짐승의 울음처럼 단칼의 묵음으로 울부짖는다’라고 썼다. 한정환 EP는 “박경수 작가의 대본은 문학의 영역이다. 문학의 세례를 받은 작가”라는 말로 시청자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대본의 영역을 설명했고, 윤석진 교수는 “직설화법이 아닌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대사 운용을 통해 생각해볼 만한 거리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비유와 상징이 두드러진 반면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쉽고 간결하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의식은 반전이 더해진 속도감 있는 전개로 재미를 더하는데 여기서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미드’식 구성의 장점이 발휘됐다. 정덕현 평론가는 “장르물의 경우 필력이 약한 작가들은 이야기를 복잡하게 쓰는 경우가 많은데 ‘펀치’는 한 인물의 흐름에 따라 줄거리가 전개된다”며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게 움직이면서도 지지부진하지 않은 추진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매회 60분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겨냥해 난타를 벌이는데 승리를 예감할 때 상대는 반격하고 쓰러질 듯 하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권력게임’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은유로 무장했어도 드라마 제목이 ‘펀치’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는 박 작가가 즐겨쓰는 ‘도치법’의 간결한 대사와 깔끔한 연출을 통해 되살아난다. “밥 먹었어?”라고 말하기 보단 “먹었어? 밥?”이라고 묻는다거나 “내 빈소에 당신은 못 올겁니다. 감옥에 있을 거니까”라는 대사는 주인공들의 목적의식을 강조하는 장치인데, 이명우 PD는 이 때 인물들의 얼굴에 집중해 살풍경한 영상을 만들어낸다. 욕망에 허우적대는 인간들의 이전투구와 더불어 밑바닥에 자리한 서민적인 정서는 시청자들의 심리적인 지지를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펀치’에서는 누구라도 가지는 가족을 향한 보편적 애정을 끌어들여 비정한 세계에 대비되는 따뜻한 풍경을 담아낸다. 정덕현 평론가는 “‘추적자’에서 백홍석 형사의 가족애를 추진력으로 끌고갔던 것처럼 ‘펀치’에서는 일곱 살 딸을 추진력으로 만들어 바깥세계와 싸운다. 사적인 부분과 공적인 부분이 절묘하게 결합돼 시청자들의 공감을 높인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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