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선거 연령만 개헌…통일·민족 등 개헌 아직 안갯속
미개정·일부 개정·개정했으나 미공개 등 시나리오 분분
“김정은, 뱉은 말 뒤집지도 이행 안할 수도 없는 딜레마”
北, 개헌 별도로 남북 육로 차단·MDL 일대 요새화 강행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북한이 최고인민회의를 열고 사회주의 헌법을 일부 개정했지만 공식 발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시한 통일과 민족 관련 내용이 빠지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지난 7~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남측의 국회격인 제14기 제11차 최고인민회의 회의를 열고 사회주의 헌법 일부 내용 수정 보충 등 의안을 처리했다.
이와 관련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개헌을 통해 12년제 의무교육제의 전면 실시에 따라 주민들의 노동 연령과 선거 연령을 수정 반영했다고 보고했다.
기존 헌법에 규정된 16세 이상 노동 연령과 17세 이상 선거 연령을 12년 의무교육제 도입에 맞춰 각각 17세와 18세로 높인다는 내용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번 최고인민회의 개정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헌법에 통일과 민족 등 문구 삭제와 새로운 영토조항 명기 여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앞서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민족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한다며 기존 헌법에 명시된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표현을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
또 영토조항을 신설하고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도록 교육하는 내용도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이번 최고인민회의를 앞두고 북한 헌법이 개정을 거쳐 통일, 민족 표현이 사라지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 새로운 영토조항이 신설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그러나 뚜껑이 열린 결과 이와 관련된 헌법 수정 보충은 없었다.
현재로서는 노동 연령과 선거 연령 외 북한이 추가로 헌법을 개정했는지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10일 “아직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열어놓고 봐야 한다”며 “북한이 통일과 민족, 영토 등과 관련한 헌법 개정을 안했을 가능성과 애매하게 했을 가능성, 그리고 이미 했지만 공개 안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조 위원은 “김 위원장의 지시는 처음부터 무리한 것이었다”며 “통일과 민족 개념은 주체사상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결국 김일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인데 주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이 통일과 민족 관련 헌법 개정 여부를 공개하지 못한 것은 김 위원장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했음을 드러낸 것”이라면서 “김 위원장이 뱉은 말을 뒤집을 수도 없고 이행하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인데, 이데올로기적 혼돈을 자초했다는 점에서 이미 체면을 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단은 김 위원장과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이 최고인민회의에 불참했다는 점에서 향후 파장이 큰 통일과 민족 등과 관련된 헌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개막일인 7일 김정은국방종합대학 창립 60돌 행사에 참석했으며, 김 부부장은 이튿날인 8일 240㎜ 조종방사포탄 검수시험사격을 참관했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이 자신의 지시가 헌법 개정으로 반영되지 못한 현실에 불만을 가진 것이란 해석이 뒤따른다.
일각에선 미국 대선과 내년 제15기 대의원 선거 뒤 새로 출범하게 될 제15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 등 시기를 조율해 헌법 개정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북한은 남북 육로 완전 차단과 군사분계선(MDL) 일대 요새화 방침을 밝히며 김 위원장이 제시한 ‘한반도 두 국가론’ 현실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 북한군 총참모부는 전날 “9일부터 대한민국과 연결된 우리 측 지역의 도로와 철길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견고한 방어축성물들로 요새화하는 공사가 진행되게 된다”며 “예민한 남쪽 국경 일대에서 진행되는 요새화 공사와 관련해 우리 군대는 오해와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로부터 9일 9시45분 미군 측에 전화통지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우리 측은 9일부터 남쪽 국경선 일대에 우리 측 지역에서 대한민국과 연결됐던 동·서부의 도로와 철길을 완전히 끊어버리기 위한 공사를 진행할 것”이라면서 “공사에는 다수의 우리 측 인원과 중장비들이 투입될 것이며 폭파 작업도 예정돼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