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경성크리처2’

1945년 경성에서 2024년 서울로

세계관 확장한 ‘경성크리처2’…“반일 드라마 아닌 아픔 기억하는 이야기” [인터뷰]
‘경성크리처’ 시즌2 [넷플릭스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내 어머니를 유린하고, 한 가정의 행복을 짓밟고 무고한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죽여 놓고도 어찌 그리 뻔뻔할 수가 있는 거지?” (‘경성크리처’ 시즌1 마지막회 윤채옥의 대사)

‘보통의 인생’을 살 수 없었던 ‘야만의 시대’였다. 내일을 꿈꿀 수 없었고, 분노해도 분노할 수 없었다. 사랑은 사치였고, 그저 살아야만 했던 시대. 1945년 벚꽃이 필 무렵 시작, 일제 치하 마지막 5개월의 이야기를 드라마는 담았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 시즌2를 연출한 정동윤 감독은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역사를 해외에서도 알아주기를 바라는게 큰 목표였는데, 잘 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총 제작비 700억원을 투입, 경성시대를 배경으로 한 ‘괴수물’을 만든 이 드라마는 현재까지 반응이 좋다. 제작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지난 27일 전세계에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 시즌2는 이틀 만에 글로벌 TV쇼부문 3위에 올랐다. 이날까지 싱가포르, 홍콩, 태국 등 아시아권에서 1위(OTT 분석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올랐고, 대한민국은 물론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80개국 톱10에 안착했다. 시즌2 공개 이후 시즌1 역시 역주행 중이다. 지난해 시즌1은 69개국 톱10에 올랐다.

‘경성크리처’는 식민지 대한제국에서 벌어진 일제의 생체실험과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생존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시즌2에선 시공간이 완전히 뒤바뀐다. 1945년 경성 시대를 마무리하고 2024년 서울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생체실험으로 태어난 생명체 ‘나진’이 몸에 침투해 늙지 않고 영원히 생존하게 된 윤채옥(한소희 분)과 경성의 모든 것을 살렸던 그의 연인 장태상과 꼭 닮은 장호재(박서준 분)의 만남을 다루며 극적으로 흘러간다.

세계관 확장한 ‘경성크리처2’…“반일 드라마 아닌 아픔 기억하는 이야기” [인터뷰]
‘경성크리처’ 시즌1, 2를 연출한 정동윤 감독 [넷플릭스 제공]

정 감독은 시즌1, 2를 관통하는 메시지에 대해 “용서와 망각은 다르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시즌1에서 일본군이라는 거대하고 명확한 적이 있었다면, 시즌2에선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을 담았다”며 “광복 이후 이름을 바뀌고, 다시 사회에 녹아들어 기득권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있다”고 꼬집었다.

시대를 옮겨와 악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전승제약’이라는 탈을 쓴 사람들이다. 정 감독은 “우리가 겪었던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아직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적”이라며 “우리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을 잊지 말자, 무엇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알고 가자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이 드라마는 반일 드라마가 아니다. 다만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가 왜 용서해야 하느냐’(박서준)는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성크리처’ 시즌1은 원초적 감정에 기대는 드라마였다. 경성 시대라는 강력한 시대적 배경, 생체 실험을 통한 괴수의 탄생, 그 실체가 혈연 관계라는 극악한 설정이 들어가자 인간 본연의 감정이 여과 없이 들끓고, 드라마의 매무새는 거칠어졌다. 밀도 높은 서사 대신 감정에 기댔고, 두 주연 배우를 돋보이기 위한 화려하나 불필요한 액션도 적지 않았다. 시대의 공포 속에서도 싹트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로맨스에 집중하려다 보니, 생뚱맞은 슬로우 컷도 적잖았다. 무수히 많은 장면들이 맥락 없이 이어지자, ‘경성크리처’는 장르 혼종의 드라마가 됐다. 때론 액션물, 때론 로맨스, 때론 코미디, 때론 좀비 판타지였다. 장르물을 표방했지만, 완성도는 떨어졌다.

다행히 시즌2는 이전보다 반응이 좋다. 그는 “시즌1 공개 이후 시청자 피드백을 듣고 편집을 다시 했다”며 “속도감을 확실하게 끌어올리고자 했고, 초반에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은 걷어내는 식으로 오락적 재미를 살렸다”고 말했다.

세계관 확장한 ‘경성크리처2’…“반일 드라마 아닌 아픔 기억하는 이야기” [인터뷰]
‘경성크리처’ 시즌2의 이무생 [넷플릭스 제공]

이번 시즌에 새롭게 합류한 얼굴이 있다. 다시 한 번 악역에 도전한 배우 이무생이다. 이무생의 출연은 시즌1 공개 전 결정됐다. 그는 “작품의 평가는 오롯이 시청자들의 몫”이라며 “다만 어떻게 하면 이 드라마에 해가 되지 않고 새 인물로서 도움이 되느냐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무생은 경성의 생체실험을 79년 뒤 서울에서도 이어가고 있다는 설정의 중심에 선 쿠로코 대장 역을 맡았다. 시즌2의 스케일은 더 커졌다. 장장 5300평(1만 7520㎡)의 공간에 전승제약의 비밀 실험실을 만들고 정체불명의 괴수의 태동을 지켜본다. 시즌1과 달리 괴수의 촉수는 더 현란하게 살아 움직인다.

그는 경성에서의 생체 실험을 통해 괴수를 만든 가토 중좌(최영준 분)의 아들이자, 전승제약 신회장의 이복동생이다.

이무생은 “‘경성크리처2’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했다. 쿠로코 대장 역할이 단순한 악역이었다면 한 번 더 고민했겠지만, 이 인물은 악역이긴 하나 말하지 못한 자신만의 비밀도 숨겨져 있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단상 같기도 했다”며 “그런 부분을 표현하면 재밌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무생이 연기하는 쿠로코는 ‘출생의 다름’으로 인한 결핍과 컴플렉스를 안은 인물이다. 이무생은 “가토와 일본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신회장과 달리 쿠로코 대장은 한국인 어머니 아래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어떻게든 형한테 뒤지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승제약의 안녕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듯 보이지만, 여자친구를 치료하겠다는 목표가 생기면서 내면의 갈등을 겪게 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이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가 쿠로코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염두한 것은 ‘감정의 절제’였다. 이무생은 “가슴 속에서 깊은 감정들이 용솟음치더라도 그것을 절대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극 초반 완벽하게 절제된 모습을 고집했다”며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순간적인 몰입력을 생각했다. 미동도 하지 않고, 눈 깜빡이는 순간도 아까워하는 재규어를 생각하면서 연기했다”고 귀띔했다.

7부작으로 마무리한 시즌2는 쿠키 영상을 통해 시즌3의 떡밥을 던졌다. 정작 정 감독은 “개인적으로 시즌3까지는 잘 모르겠다”며 “제가 구상을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식으로 끝을 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고 귀띔했다. 이무생도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든다”며 “쿠로코는 한 마리 늑대처럼 자기만의 복수를 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 시대가 낳은 또 하나의 괴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