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아파트에서 일면식도 없는 이웃주민을 일본도로 무참히 살해한 30대 남성이 정신병으로 의심되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친언니를 살해했음에도 정신병으로 '심신상실'을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받은 사례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일본도 살인 사건'의 피의자 백모(37) 씨는 1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출석했다.
백 씨는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그는 피해자가 미행한다고 생각해 범행을 했는지 묻는 말엔 "네"라고 답했으며, 마약검사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선 "비밀 스파이들 때문에 안 했다"고 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도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나를 미행하는 스파이라고 생각해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파트 주민들에 따르면, 대기업에 다니다 올해 초 퇴사했다는 그는 혼자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는 모습이 목격됐고, 놀이터에 일본도를 들고 나와 아이들에게 '칼싸움을 하자'며 접근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백 씨가 정신병으로 '심신상실' 상태에서 범행한 것이 인정될 경우 무죄가 내려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살인을 해놓고도 정신병이 인정돼 무죄를 받는 경우가 간간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고법 제3-2형사부(김동규·김종기·원익선 판사)는 친언니를 수차례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기소된 50대 여성 B 씨의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하며 치료 감호 명령을 내렸다.
B 씨는 지난해 7월 14일 오후 5시34분께 집에 온 60대 언니를 보고 악귀가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B 씨는 주먹과 발로 언니를 폭행하고 언니가 쓰러진 뒤에도 계속 때려 숨지게 했다. 이후 부활 의식을 하겠다며 사망한 언니 손에 묵주를 감싸두는가 하면, 하의를 벗고 집 주변을 배회하고 쓰레기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 등 이상 행동을 했다.
B 씨는 조현병과 우울증 등으로 2006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6~2017년에는 칼을 들고 친딸과 손주를 위협하고 2020년에는 기르던 개를 때려죽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는 "사람들에게 공격받는 것이 영적 싸움이다"고 하는 등 망상이 더 심해졌다.
1심 재판부는 "B 씨가 범행 당시 조현병에 따른 정신 장애로 사물 변별, 의사 결정 능력이 결여된 심신 상실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형법에 의해 벌하지 않는 상황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B 씨는 이 사건 범행에 대한 수사가 개시된 뒤 정신과 약을 먹어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까지 건강을 회복했지만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여전히 망상으로 왜곡된 기억을 갖고 있다"며 1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정신병이 있음을 내세워 심신상실로 인한 무죄를 인정받는 일은 드물기는 하지만 간혹 있는 일이다. 지난해 '분당 흉기 난동 사건'을 일으켰던 최원종도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는데, 최근 치러진 항소심에서 심신상실에 의한 무죄를 주장했다. 최 씨는 최후진술에서 "스토킹 조직이 자신을 죽이려고 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국정원과 신천지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도청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검찰은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