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황 부진에 사업 리스크 노출 ‘설상가상’
큐텐에 인수 직전까지 갔던 11번가
컬리·SSG닷컴·오아시스 등 FI들 '긴장'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싱가포르의 큐텐(Qoo10)에 속한 티몬과 위메프가 판매 대금 정산 지연 사태로 이커머스 업계의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경쟁 심화와 부진한 업황으로 상당수 이커머스 기업이 생존을 고민하는 시기에 유동성 문제로 지속가능성 리스크가 노출된 탓이다. 지난해 큐텐과 경영권 양수도 거래가 불발된 11번가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의 자회사 11번가는 재무적투자자(FI) 주도로 경영권 매각이 이뤄지고 있다. FI는 국민연금, H&Q코리아, 이니어스프라이빗에쿼티로 구성된 컨소시엄이다. FI의 11번가 지분 소유 비율은 18.18%지만 지난해 SK스퀘어가 FI 지분 콜옵션을 포기하면서 매각 주도권을 갖게 됐다.
티몬과 위메프 사태로 SK그룹의 11번가 콜옵션 포기 사태는 재차 조명되고 있다. SK스퀘어는 당초 11번가 FI의 엑시트를 위해 큐텐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큐텐은 국내 1세대 이커머스로 익숙한 G마켓 창업자 구영배 대표가 설립한 회사다. 큐텐은 2022년 티몬 인수를 시작으로 이듬해 위메프와 인터파크커머스 올해는 AK몰의 전자상거래 사업부, 북미와 유럽 기반 이커머스 업체 위시까지 차곡차곡 경쟁사를 사들였다.
큐텐은 글로벌 이커머스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목표로 지난해 11번가 인수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영업활동에서 현금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어 투자 재원이 풍부한 것은 아니었다. 큐텐은 SK 측의 신용보강을 통한 자금 조달, 지분 맞교환 등의 방식을 제안했으나 매도자 측에서 거절하면서 거래는 없던 일이 됐다.
작년 11월 SK스퀘어가 11번가 FI 지분 재매입을 포기하면서 큐텐한테라도 팔았어야 했다는 자조 섞인 평가도 나왔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큐텐과의 협상 불발은 '최악'은 피한 의사결정이 됐다. 큐텐은 핵심 계열사인 티몬과 위메프에서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되면서 자금난이 심화될 입장에 처했다.
앞서 22일 티몬과 위메프가 자사 플랫폼 입점 업체에 대해 판매 대금을 정산하지 못하면서 그 피해가 소비자한테까지 전가되기 시작했다. 티몬과 위메프는 일부 환불을 진행해 사태 진화에 나서고 있으나 유동성 부족의 근본적인 해결점은 찾지 못하고 있다. 큐텐의 물류 솔루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이마저도 낙관하기 어려워졌다.
큐텐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FI들의 긴장감도 고조될 수밖에 없다. 주요 FI로는 IMM인베스트먼트, 코스톤아시아,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앵커에쿼티파트너스, PS얼라이언스 등이 있다.
이커머스 업계 전반에서도 큐텐 사태를 예의주시 중이다. 현재 경영권 매각이나 투자유치를 진행 중인 이커머스 기업은 11번가를 비롯해 SSG닷컴이 있다. 오프라인 유통 사업 기반과 이커머스를 병행하는 홈플러스익스프레스도 주요 매물로 꼽힌다. 이외에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곳으로 오아시스와 컬리가 있다.
이들 기업 역시 PE나 벤처캐피탈(VC) 등 FI를 핵심 주주로 두고 있다. SSG닷컴에는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BRV캐피탈의 자금이 담겨 있다. 컬리의 1대주주는 앵커에쿼티파트너스, 오아시스는 UCK파트너스를 2대주주로 두고 있다.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지배주주는 MBK파트너스다.
현재로선 SSG닷컴의 FI 정도가 엑시트 가능성은 가장 높다. SSG닷컴의 지배주주인 이마트와 신세계가 올해 말까지 FI 교체나 풋옵션 등을 통해 투자금 회수를 보장해준 덕분이다. 나머지 이커머스의 FI는 모두 출구 전략은 뚜렷하지 않다. 이커머스의 양강 체제를 굳히고 있는 쿠팡과 네이버의 주가도 고전하는 가운데 큐텐에서 비롯된 유동성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이커머스 몸값’ 설득에 난관이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