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반도체 보조금 대신 별도 기금조성 제안
올해 끝나는 투자세액공제 6년 연장 재발의
21대 국회서 무산…새 국회 빠른 처리 요구
반도체 경쟁 속 법안 지연…경쟁력 약화 우려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지난 21대 국회에서 폐기됐던 K-반도체 관련 지원 법안들이 22대 국회 시작과 함께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큰 틀에서는 국내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취지는 같아 사실상 재탕 수준이다. 세계 주요국들이 대규모 보조금을 앞세워 자국 반도체 기업 지원에 나선 반면 국내서는 법안 지원이 꽉 막혀 이번에도 빠른 처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K-반도체를 키우겠다는 법안을 내놓고도 입법에 실패한 전례에 비춰 또 다시 말뿐인 지원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11일 반도체 업계와 국회에 따르면 조지연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기금을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강화기금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발의자 명단에는 삼성전자 사장 출신으로 이번에 국회에 입성한 같은 당 고동진 의원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현재 반도체 기업들의 연구개발비와 시설투자비 중 일부를 소득세나 법인세에서 공제해주는 투자세액공제 특례가 시행 중이지만 이마저도 올해 12월 31일자로 종료를 앞두고 있다.
조 의원은 “현행 투자세액공제만으로는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라며 “국가첨단전략산업 보호·육성을 위해 일반예산 외에 안정적이고 신축적 대응이 가능한 별도의 재원확보 방안이 필요하다”고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재원확보 방안으로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기금은 ▷정부 출연금 ▷일반회계로부터의 전입금 ▷다른 기금으로부터의 전입금 및 예수금 ▷정부 외의 자의 출연금 또는 기부금 등으로 조성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소속으로 ‘국가첨단전략산업경쟁력강화기금심의회’를 두도록 했다.
앞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직접적인 보조금보다 기금이 낫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안 장관은 지난달 7일 “보조금으로 주는 것은 국회 (동의)도 쉽지 않다”면서 “전략산업을 키우는 데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첨단산업 기금 조성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일본·중국 등 경쟁국이 반도체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와 같은 성격의 보조금이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26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기업 세액공제에 대해 “R&D와 설비 투자금의 일정 비율을 국가가 환급해주는 것으로 보조금이나 다를 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나마 지원책으로 꼽히는 투자세액공제 특례가 올해 12월31일 일몰 예정인 가운데 이를 6년 연장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지난달 31일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 주도로 다시 발의됐다.
앞서 21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법안이 있었지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머무른 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결국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지난해 최악의 불황 속에서도 미래를 위해 시설투자에 적극 나섰던 기업들은 조속한 법안 처리로 기한을 연장해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622조원을 투입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역시 반도체 업계의 숙원으로 꼽힌다.
해당 법안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에 계류된 채 국회 임기 종료를 맞으며 ‘휴지조각’이 됐다. 당시 법안을 발의했던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달 7일 다시 같은 내용의 법안을 냈다.
앞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제출된 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2027년부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반도체 팹(공장) 9개와 협력사 200여개가 입주하면서 2050년까지 약 10GW의 전력수요가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전력 공급망 구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주민의 반대와 지자체 인허가 지연으로 공장 건설이 늦어지는 문제를 막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다. 특별법은 전력망 구축 과정에서 인허가 절차를 대폭 개선하고 차별화된 보상·지원 제도를 통해 국민 피해를 최소화 하는 등 전방위적인 지원 방안이 담겼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미 전력이나 용수, 도로 같은 필수 인프라 조성이 당초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다”며 “생산시설 구축이 늦어지면 결국 경쟁국들과 격차가 더 벌어져 글로벌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는 만큼 빠른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